이장규 텔레칩스 대표가 성남 판교 본사에서 차량용 반도체 샘플을 소개하고 있다.  /최형창 기자
이장규 텔레칩스 대표가 성남 판교 본사에서 차량용 반도체 샘플을 소개하고 있다. /최형창 기자
몇년 전까지 ‘차량용 반도체’는 자동차, 반도체 업계 모두에서 주목받던 시장이 아니었다. 차량용 반도체는 기능이 단순하고 수익성이 낮은 탓에 수많은 자동차 부품 중 하나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위상이 달라졌다. 자동차가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발전하면서 자동차 안에 반도체 탑재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엔진이나 변속기뿐 아니라 인포테인먼트(계기판 등에 각종 운행정보와 콘텐츠를 보여주는 시스템)에도 반도체 칩이 들어간다. 차량용 반도체 글로벌 시장에서는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온, 일본 르네사스가 3강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텔레칩스가 토종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15일 판교 본사에서 만난 이장규 텔레칩스 대표는 “매일 위기 의식 속에 살고 있다”며 “정신 바짝 차리고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한 순간에 도태되는 것이 반도체 시장”이라고 말했다.

MP3로 시작해 카오디오 이어 차량용 반도체까지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텔레칩스는 초창기 MP3플레이어용 반도체로 업계에 명함을 내밀었다. MP3플레이어용 반도체를 설계한 전문성은 카오디오까지 확장됐다.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MP3 시장이 소멸하자, 이 대표는 카오디오 설계하면서 쌓은 연구 성과를 발판 삼아 본격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텔레칩스는 차량용 반도체 중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인 ‘돌핀’ 시리즈를 포르쉐, 혼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가속 페달을 더 힘차게 밟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 카메라, MP3플레이어가 사라지고 전부 다 기기 하나로 융합됐다”며 “자동차도 자율주행자, 전기차로 바뀌면서 구조가 바뀌고 있어서 융복합화가 일어나면 인포테인먼트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텔레칩스 사옥 안에는 직원 휴식 및 여가 공간으로 밴드실이 있다.  /최형창 기자
텔레칩스 사옥 안에는 직원 휴식 및 여가 공간으로 밴드실이 있다. /최형창 기자
자동차 내부에서 그동안 여러 칩이 기능을 나눠 담당했다면 미래에는 하나의 칩에 다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핵심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인공지능(AI)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에이다스(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나 자율주행분야뿐 아니라 차량 내부 통신을 원활하게 하고, 외부 침입을 막는 네트워크 게이트웨이 등을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앞으로 나오는 우리의 모든 인포테인먼트칩에는 AI 기능이 들어간다”며 “에이다스는 상용샘플이 나왔고, 자율주행칩은 7월쯤 엔지니어링 샘플이 나온다”고 밝혔다.

텔레칩스가 설계한 제품의 양산은 주로 28나노미터(㎚·1나노는 10억 분의 1m)공정을 쓰고 있다. 양산에서 14나노를 최근에 시작했다. 개발하는 제품은 8나노를 쓰고 있고, 새로 시작한 설계는 5나노 공정도 사용한다.

텔레칩스는 지난해 연말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인 독일 콘티넨탈과 맞손을 잡았다. 텔레칩스의 시스텝온칩(전체 시스템을 칩 하나에 담은 기술집약적 반도체)이 콘티넨탈의 고성능 스마트 콕핏 고성능 컴퓨터(HPC)에 적용돼 인포테인먼트, ADAS 및 클러스터 성능 개선에 쓰일 예정이다. 이 대표는 “양산으로의 성과는 2년 이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규 텔레칩스 대표가 성남 판교 본사에서 차량용 반도체 샘플을 소개하고 있다.  /최형창 기자
이장규 텔레칩스 대표가 성남 판교 본사에서 차량용 반도체 샘플을 소개하고 있다. /최형창 기자

"국내 팹리스 생태계 살리려면 정부가 수요기업들에 인센티브 줘야"

텔레칩스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7% 늘어난 1910억원, 영업이익은 82% 성장한 167억원을 거뒀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출액의 34%인 655억원을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재투자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각 기업들에 보조금 지급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은 인색할뿐 아니라 세금을 더 걷어가는 형국이다. 팹리스산업협회 수석부회장도 맡고 있는 이 대표는 “수백억원을 R&D 비용으로 투자하는데 중견기업이 됐다고 최저한세를 영업이익의 8%를 무조건 떼어간다”며 “R&D 투자를 많이 하는 회사들에 대한 고려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뿐 아니라 국내 팹리스와 협력하는 대기업에 대한 지원도 생태계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에서 국산화에 대한 강조가 예전보다는 늘어났지만, 선뜻 먼저 써주겠다고 하는 국내 대기업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며 “국내 팹리스산업 생태계를 위해 정부가 수요기업들에 과감히 세제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했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출신인 이 대표는 1999년 텔레칩스를 설립했다. 텔레칩스는 초기에 MP3플레이어용 반도체로 시장에서 주목 받았고, 이후 차량용 반도체로 전환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지속가능한 종합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회사로 자리잡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텔레칩스 사옥 내부 카페에서 직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최형창 기자
텔레칩스 사옥 내부 카페에서 직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최형창 기자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