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배당을 늘리면 밸류업이 될까?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 기업의 주가가 주요국 대비 저평가돼 있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낮은 배당 성향을 제시하면서, 기업 스스로 기업가치 현황을 진단하고 주가를 높일 계획을 자율적으로 공시해 실행에 옮기면 세제 등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 골자다. 한마디로 배당을 늘려 주가를 올리라는 것이다. 금융위 발표 이후 배당소득세 인하 등을 포함해 추가 지원 방안에 대한 기대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기업가치는 기업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이를 통해 벌어들일 현금흐름의 현재 가치다. 기업가치가 낮아 주가가 낮을 수 있고, 기업가치는 낮지 않지만 주가와 기업가치 간 괴리로 주가가 낮을 수 있다. 어찌 됐든 주요국과 비교해 한국 기업의 순자산이나 이익 대비 주가가 낮다면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한국 기업 주가의 저평가 원인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제대로 진단했는지다. 저평가의 원인과 해결이 배당과 관련이 없다면 배당을 늘리는 정책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가의 저평가 원인으로 주가와 기업가치 간 괴리 가능성부터 살펴보자. 주가가 기업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면, 주가가 기업의 수익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는 기업과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에 기인할 수 있다. 기업 수익성을 좌우할 다양한 요소에 대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투자자가 기업가치를 저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기업은 배당을 늘려 주가를 올릴 수 있다.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 늘어난 배당을 감당하고도 사업에 투자할 만한 충분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투자자에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당이 기업의 높은 수익성에 대한 신호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당 증가는 기업이 더 이상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이 없어 사내 현금을 주주에게 돌려준다고 투자자에게 읽힐 수 있다. 이 경우 배당을 늘리면 오히려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 배당은 기업의 성장 가능성 부재에 대한 신호로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 투자자가 평가하는 기업가치는 자신의 개인적 선호가 반영될 수 있다. 일부 투자자는 배당을 통한 정기적인 수입을 원한다. 이런 투자자들에게 배당 증가는 주식에 대한 투자 수요를 북돋는다. 그간 한국 기업의 배당 성향이 낮아 투자자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배당 증가는 주가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단기에는 효과가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배당에 대한 선호는 기업 수익성과 관계없고, 주식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주가는 기업의 수익성에 기초한 기업가치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가가 기업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경우, 배당을 늘린다고 주가가 무조건 오른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배당과 관련해 주가의 저평가 원인을 기업가치 자체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배당이 적어 기업가치가 낮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재무학에서 잘 알려진 모디글리아니-밀러 정리에 의하면 금융시장에 결함이 없어 기업의 자금 조달에 문제가 없다면, 배당은 기업의 수익성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기업가치와 무관하다. 오히려 배당에 세금이 부과되면 그만큼 기업가치가 하락한다. 더불어 금융시장에 비대칭 정보와 같은 결함이 있다면 외부 자금조달에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내 현금을 배당으로 사용하고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하기보다 이를 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기업가치를 올리는 길이다.

배당과 기업가치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경우는 기업이 사내 잉여 현금을 비효율적으로 투자할 때 발생한다. 수익을 올릴 마땅한 사업이 없으면서도, 사내 잉여 현금을 개인적으로 유리한 사업에 투자하는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가 있다면 배당이 낭비적인 잉여 현금 사용을 줄일 수 있어 기업가치를 증진한다.

결국 한국 기업의 성장성이 부족하고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로 사내에 쌓인 자금을 비효율적으로 낭비할 경우에만 배당이 기업가치와 주가를 올리는 길이다. 그렇지 않다면 배당을 늘린다고 주가가 오를지는 모를 일이다.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