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 초토화"…노조 행세 범죄집단의 '황당 수법'
과거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경험을 이용해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조직적으로 금품을 갈취하던 일당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고질적 병폐를 해소하지 않은 사업장들은 최대 수천만원씩을 뜯겼다.

A와 B는 2019년부터 2021년 8월까지 모 노동조합 소속 지부의 조직국장, 환경교섭국장 등으로 활동해 오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공사업체 관계자들에게 노조원 채용을 요구하거나 노조전임비, 발전기금 등의 금원을 달라는 속칭 ‘현장교섭’을 담당해 왔다.

이들은 2022년 5월 경 B가 신설 노동조합의 '부본부장'으로 활동 중인 것을 기회로 지부 인준을 받은 후 그간의 ‘현장교섭’ 경험을 살려 건설업체를 상대로 본격적으로 금품을 갈취하기로 마음먹었다.
"건설 현장 초토화"…노조 행세 범죄집단의 '황당 수법'
이들은 식당을 운영하던 C에게 “현장을 다니며 집회를 하면 1년 후에는 수익이 쌓여 투자한 돈을 금방 회수할 수 있다”고 꼬셔 노조사무실 임대료, 집회용 차량 구입비, 집회에 동원할 아르바이트생 일당 등 범행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도록 시켰다. 또 공사 현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사진 촬영해 관공서에 고발하는 일을 하던 D 등을 합류 시켰다.

B는 지역 건설현장 약 140곳의 정보를 수집해 범행대상을 선정하는 역할과 신생 노조들으로부터 지부 인준을 받아오는 역할, 공범들과 집회에 동원한 아르바이트생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에 더하여 피고인 A은 집회신고를 하고 집회에 동원할 아르바이트생들을 모집하는 역할을 담당, D 등 나머지 인원은 집회에 참가하고 건설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협박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진용을 갖추며 이들의 행각은 점차 대범해 졌다. 이들은 2022년 6월 초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현장담당자에게 “소속 노조원을 채용하던지, 노조 발전기금으로 1000만 원을 달라.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각종 민원을 제기하고 공사현장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겠다”라고 협박해 288만원을 뜯어냈다.

이후 또다른 아파트 공사현장 앞에서는 일당을 주고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들을 집회에 동원한 다음 출근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의 공사현장 출입을 제지했다. 이후 현장 관계자들에겐 “우리 노조원들을 채용하거나 3개 현장에서 각 15명을, 일당 25만 원에 채용한 것으로 치고 총 45명의 인건비를 지급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요구조건을 안들어주면 전국적으로 있는 우리노조가 연대해 각 공사현장에서 집회를 하겠다”라고 협박해 결국 2개월여 동안 3100만원을 갈취했다.

이들은 같은 방식으로 여러 곳에서 돈을 뜯어냈고 한 현장에서는 1억2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미수에 그치기도 하는 등 행태가 적발됐다. B는 대낮에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결국 A씨 등 5명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공갈)·업무방해·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을 맡은 부산지방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이들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고 A와 B에게는 징역 2년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노동조합의 직책을 빌어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금원을 갈취한 범행은 죄질이 좋지 않다"며 "나아가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필요한 다른 노동조합 활동에 저해되는 행위인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건설현장의 취약한 노무관리 관행이 범죄자들의 먹이가 됐다고 지적한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사소한 법 위반에도 공사 현장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을 십분 이용한 행태"라며 "인력 부족과 안전 규제에 취약한 영세 사업장이 특히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도 "이런 노조를 빙자한 조폭 행세 탓에 전체 건설노조가 욕을 먹고 것"이라며 "노조 규모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지부나 지회가 난립하는 것을 좌시하는 양대노총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