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AI는 중국이 장악할 것인가 [박동휘의 산업 인사이트]
결국 AI는 중국이 장악할 것인가 [박동휘의 산업 인사이트]
요즘 월가는 AI 혁명과 이로 인한 주가 급등으로 뜨겁다. 엔비디아 창업자인 젠슨 황,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는 샘 올트먼 등 ‘테크 수퍼 리치’들은 연일 AI가 만들어 낼 장밋빛 미래를 역설하는 중이다. 덕분에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 중이다. 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주춤한 듯 보였던 벤처 투자도 되살아나고 있다. 시장분석 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AI 기업에 투자된 자금만 425억달러에 달했다.

천문학적 숫자들의 향연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아마라의 법칙’까지 등장했다. 1960년대 유명한 미래학자이자 인스티튜트 포 더 퓨처(Institute for the Future)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로이 아마라는 ‘테크놀로지는 단기적으로 과대 평가되고, 장기적으로는 과소 평가된다’고 설파했다. 1990년대 인터넷 혁명이나 2000년대 스마트폰의 등장은 실제로 아마라의 법칙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AI 낙관론자들은 인공지능 혁명도 마찬가지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길게 보면 주가가 더 오를 것이란 얘기다. AI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빅테크의 청사진 속 숫자들은 상상 초월이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1000억달러(약 134조6000억원)를 투자해 인공지능(AI)용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타게이트(Stargate)’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향후 6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미국 빅테크와 테크 리치들이 미래를 낙관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칩(Chip) 혁명’이다. AI를 학습시키는데 필요한 고성능 AI 칩을 대량으로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게 되면서 사람의 뇌에 비견될만한 일반인공지능(AGI)을 늦어도 5년 안에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00만원이 훨씬 넘는 1990년대 벽돌 휴대폰이 손안에 쥘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가격 장벽도 확 낮아진 것과 비슷한 일이 인공지능 영역에서 조만간 실현될 것이란 가정이다.

칩 혁명이 일반인공지능의 미래 앞당길 것

앞으로 AI는 인터넷, 스마트폰처럼 우리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될 것인가. 아마라의 법칙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다’가 정답이다. 중국의 하이테크 기업 투자에 특화된 시노베이션 창업자 리카이푸는 AI를 전기에 비유한다. 전기의 발견으로 인류는 산업화라는 전대미문의 퀀텀점프를 달성했다. 리카이푸가 보기에 AI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파괴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존재다.

그런데 리카이푸는 AI 혁명의 과실을 따 먹을 수 있는 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단언했다. 흥미로운 점은 리카이푸 논지의 근거가 실리콘밸리의 AI 낙관론자들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FT의 칼럼니스트인 에드워드 스탠리는 저렴해진 생성형 AI 도구가 산업 곳곳으로 퍼지면서 AI발 산업혁명이 일어날 것이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증시를 AI가 굳건히 뒷받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카이푸도 스탠리와 비슷하게 미래를 예측했지만, 결론은 달랐다. 그는 <AI 슈퍼파워>라는 책에서 “딥러닝을 통해 세계 경제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주역은…미국의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 현실 세상과 몸으로 부딪치며 일하고, 이익에 굶주려 있고, AI 전문가들과 팀을 이뤄 딥러닝이 가진 변혁의 힘을 실세계 산업에 구현하는 기업가들이 주역이 될 것이다”고 썼다. 물론, 그 주역은 중국의 기업가들이다.

개발에서 적용으로…AI 전쟁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AI 전쟁에서 중국은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중국은 엄청나게 풍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AI 학습을 위한 식량이 무궁무진하다.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는 엄두도 못 낼 세밀한 개인 데이터를 바이두 등 중국의 AI 기업들은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전기를 생산할 석탄과 석유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것과 같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AI 친화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시진핑 체제는 AI를 산업적인 관점을 넘어 국가안보, 더 나아가 핵무기급 ‘터닝 포인트’ 기술로 여긴다. 미국과 유럽이 AI 기술의 통제 불가능한 확장을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중국은 그들만의 길을 갈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AI 경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의 조립공장’이던 중국은 AI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미국, 유럽 등에 의존하지 않는 그들만의 기술과 생태계로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창의와 혁신, 그리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가들의 집합인 실리콘밸리와 모방과 경쟁, 그리고 중국몽의 실현에 매진하는 충성가들의 집합인 중관춘(베이징)의 정면충돌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한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이다. 그래서 ‘AI 주권’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