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바라본 서울숲과 트리마제 등 일대 아파트 모습.  /사진=한경DB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바라본 서울숲과 트리마제 등 일대 아파트 모습. /사진=한경DB
서울 아파트 매물이 8만건 넘게 쌓인 가운데 초고가 주택들이 연일 신고가를 새로 쓰고 있다. 비싼 집만 더 비싸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매물은 쌓이는 반면, 호가는 하락하지 않다보니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 전용 136㎡가 57억원(5층)에 거래됐다. 종전 거래가격은 2021년 5월 43억9000만원(22층)이었다. 성수동이 '신흥 부촌'으로 떠오른 가운데 슈퍼주니어 이특, 희철, 예성 등 20여명의 연예인이 사는 것으로 유명한 이 아파트 가격도 3년 만에 13억원가량 치솟은 셈이다.

'전통 부촌' 강남구에서는 100억원 넘는 거래도 나왔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 6·7차' 전용 245㎡는 115억원(10층)에 손바뀜됐다. 2021년 4월 80억원에 거래되고 3년 만에 35억원 올랐는데, 압구정에서 100억원 거래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 12차' 전용 182㎡도 69억원(4층)에 팔리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다.

서초구의 상황도 비슷하다.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전용 84㎡도 40억4000만원(11층)에 신고가를 썼다. 지난 1월 38억원(6층)에서 2억원 넘게 뛰었다. 서초동 '래미안 리더스원' 전용 59㎡도 지난달 22억5000만원(27층)에 매매되면서 역대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3년 만에 13억 오른 트리마제…100억원 넘긴 압구정현대

초고가 주택에서 신고가 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에는 매물이 쌓이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은 서울 아파트 매물이 이달 8만1714건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했다. 서울 아파트 매물은 지난달 8만건을 넘어섰는데, 지난달 중순에는 8만3440건까지 늘기도 했다. 아실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규모다.

통상 매물이 늘어나면 집값 하락 신호로 본다. 수요가 감소하면서 시장에서 매물을 소화하지 못한 탓에 적체가 이뤄진다는 이유다. 다만 부동산 업계는 거래량이 늘고 집값이 반등하는 점에 주목한다. 수요가 줄어든 게 아니라 시장이 회복될 조짐을 보이자 매물이 증가했단 해석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824건까지 위축됐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들어 월 2500건 내외로 늘었다. 서울 집값도 반등했다. 한국부동산원은 2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값이 0.01% 오르며 18주 만에 상승한 것으로 집계했다. 가장 먼저 반등을 시작한 송파구에 이어 마포구, 광진구, 동작구 등 상승으로 돌아서는 지역도 늘어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 모습.  /사진=한경DB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 모습. /사진=한경DB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지역·단지별로 상승·하락이 혼재하고 매수·매도 희망 가격 차이가 해소되지 않았다"면서도 "선호단지에서는 급매물이 소진되고 매수 문의가 꾸준히 증가하며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선 개업중개사들은 주택 시장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저가 아파트는 가격을 낮춘 급매물만 거래되고, 고가 아파트는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팔리면서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다.

서울 매물 8만건 쌓였지만…"집값 내린다는 집주인 없어"

서초구 반포동의 한 개업중개사는 "최근 서울 아파트 시장이 급매물 위주로 거래된다고 하지만, 초고가 아파트는 상황이 다르다"며 "현금이 충분한 수요자들이 매수에 나서는 만큼 매물이 나오면 신고가에 팔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저가 아파트는 현재 가격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초고가 아파트는 미래 가치에 초점을 두고 거래하는 측면도 있다"며 "초고가 아파트가 시장의 선행지표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강남구 역삼동 개업중개사도 "향후에도 집값이 내릴 것이라 생각하는 집주인이 없다"며 "집을 내놨다가 안 팔리면 그대로 가지고 있거나 증여하면 된다는 인식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가 아파트 매수자들도 가격 상승에 큰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매물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매물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스1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 고가 아파트는 점점 비싸지고 중저가 아파트만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KB부동산 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3월 기준 가격 하위 20%(1분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4억9690만원을 기록하며 전월 대비 135만원 하락했다. 하지만 상위 20%(5분위) 평균 매매가격은 24억6383만원으로 전달 보다 2만원 올랐다.

집값 양극화 정도를 의미하는 ‘5분위 배율’도 악화했다. 서울 아파트 5분위 배율은 지난달 5.0을 기록해 2018년 4월(5.1) 이후 가장 높았다. 5분위 배율은 주택을 가격 순으로 5등분 상위 20%의 평균 가격을 하위 20%의 평균 가격으로 나눈 값이다.

고준석 연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상남경영원 교수는 "초고가 주택에서 신고가가 나온다는 것은 중산층 이상 부유층이 시장 회복을 점치고 있다는 의미"라며 "다만 선호가 낮은 아파트는 매물이 쌓이고 거래도 급매물 위주로만 되는 등 지역별 양극화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