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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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시장에선 비싼 집은 더 비싸지면서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보유세 부담이 줄어들면서 '똘똘한 한 채'를 가진 유주택자들이 굳이 집을 내놓을 필요가 없어져서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무주택자들은 '똘똘한 한 채'를 찾으면서 이들 집값은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2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진행된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더 이상 국민들이 마음 졸이는 일이 없도록 무모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전면 폐지할 것"이라며 "공시가격 현실화는 법을 개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법 개정 전이라도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폐지와 같은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과거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오르자 징벌적 과세로 수습하려 했다"며 "특히 공시가격을 매년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는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시행했는데 곳곳에서 엄청난 부작용이 드러나고 국민들의 고통만 커졌다"고 설명했다.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도입됐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매년 단계적으로 높여 최장 2035년까지 9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공시가격과 시세를 격차를 줄이겠다고 내세운 정책이었지만, 현실은 '세금 부담'과 이를 메꾸기 위한 '임대료 증가'로 이어졌다. 집주인과 임차인 모두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군다나 최근 몇년 새 집값이 떨어지면서 현실화율을 웃도는 실거래가가 나오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열린 스물한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열린 스물한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집값이 정점을 기록했던 2021년 세금 부담이 급증하면서 강남권에선 세금을 내지 못하는 고령의 집주인들이 집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윤 대통령의 '공시가 현실화 방안 폐지 발언'에 주요 지역 매물이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세금 부담에 한 때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면서도 "이제는 세금 부담이 줄면서 굳이 강남 아파트를 팔 이유도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득 여력이 있는 무주택자들이 이왕 살 집이라면 '똘똘한 한 채'를 살 가능성이 커졌다"며 "대출이자에 세금 부담까지 고려해 매수를 했다면, 이제는 대출부담만 생각해 더 높은 가격대의 아파트 매수를 가늠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결국 강남을 비롯한 똘똘한 한 채로 불리는아파트들은 매물로 나오기 어렵고, 사고자 하는 이들 수요는 여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금부담은 적은 가운데 집값은 오를 것으로 예상되다보니 '부자감세'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 등 6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24총선주거권연대'와 주거권네트워크는 이와관련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도입한 것은 낮은 시세반영률, 지역·유형·가격대 간 불형평성, 수도권과 비수도권, 저가주택과 고가주택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며 "이런 문제를 그대로 둔 채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폐지하는 것은 부자감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현시점에선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폐지하려면 부동산 공시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계획을 폐지한 이후 내년 공시가격을 어떻게 산정할지를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국토연구원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용역 결과를 반영해 하반기 법안 발의를 추진할 예정이다.

진현환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최근 YTN라디오에 출연해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폐지한다고 해서 아예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현재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인 만큼 7~8월께 세부적인 방안이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2024년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 변동률 현황./사진=국토교통부
2024년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 변동률 현황./사진=국토교통부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인 만큼 총선 결과에 따라 상황이 또다시 바뀔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정부 들어 부동산 규제를 많이 푼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좌초된 부분이 상당히 많다"며 "공시가 현실화 폐지가 실현될 수 있을지는 총선에 달렸다"고 귀띔했다.

공시가 현실화 방안 폐지를 두고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세금으로 집값을 잡아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고, 또 다른 누리꾼도 "세금을 끌어올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세금을 넘기는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느냐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전했다.

다른 누리꾼은 "누가 봐도 뻔한 총선용 발언이다"라고 맞받아쳤고, 다른 누리꾼 역시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부자 감세’ 아니냐", "공정한 과세 체계를 무너뜨리는 내용"이라고 반대하기도 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