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의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한경DB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한경DB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은 받은 실수요자)들이 서울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역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에 다시 몰리고 있다. 노·도·강 지역은 서울 외곽지역이자 하락한 집값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해 초 노·도·강 지역은 특례보금자리론으로 집을 사려는 수요들이 몰리면서 반짝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집값이 하락했고, 회복이 요원한 상태다. 그럼에도 실수요자들이 서울에서 9억원 이하의 집을 구하기 위해 외곽으로 발길을 향하고 있다.

21일 함영진 우리은행자산관리컨설팅센터 부장(대우)이 서울부동산정보광장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달 7일까지 신고된 2월 서울 아파트 거래 총 1653건 중 9억원 이하 아파트 비중은 57.7%(954건)였다. 1월 55.1%보다 9억원 이하 비중이 2.6%포인트 늘었다. 아직 거래 신고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중이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

9억원 이하 아파트는 대개 서울 외곽 지역에 몰려 있다. 부동산 리서치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중 신생아 특례대출 대상인 9억원 이하 주택 비중은 약 39.6%다. 지역별로는 △도봉구 91.8% △중랑구 87.8% △노원구 84% △금천구 83.5% △강북구 82% △구로구 77.1% △관악구 72.6% 등 순이다.

이번엔 신생아 특례대출로 또 '영끌'…어디로 몰렸나 봤더니
지난달 9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가 늘어난 이유는 신생아 특례대출의 영향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출산 가정에 혜택을 주는 상품이다. 대출 신청일을 기준으로 2년 내 아기를 낳았거나 입양했다면 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집을 살 때 혹은 전셋집을 구할 때 모두 쓸 수 있다. 금리는 연 1.6~3.3% 수준으로, 9억원 이하 전용 85㎡ 이하 주택이 대상이다. 이 대출은 출시 40일이 지난 현재 1만6164건, 4조193억원의 대출이 신청됐다.

문제는 '제2의 영끌족'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해 초 특례보금자리론이 출시된 이후 노·도·강 집값이 반짝 상승했는데, 이를 지켜봤던 무주택자들이 이번엔 신생아 특례대출을 활용해 '영끌'로 집을 사고 있어서다.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대표는 "지난해 초 특례보금자리론이 출시된 이후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등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역에서 아파트 거래가 많았다"며 "올해도 정책 대출 상품을 활용해 집을 알아보려는 수요자들이 작년 말에 비해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집주인은 정책 대출 상품과 함께 신용대출에도 손을 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유있게 집을 산 게 아니기 때문에 이자 부담에 어려움을 겪는 집들이 많다"고도 귀띔했다.

다만 신생아 대출은 특례보금자리론보다 공급 규모가 작고 신청 조건 역시 제한적이다. 신규 보다는 갈아타는 대환 대출이 많은 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신생아 특례대출 구입 자금 대출 중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타려는 대환대출 신청 규모는 2조1241억원으로, 구입 자금 대출 신청액의 66%를 차지했다. 신규 자금은 30%대에 머무는 셈이다.

상계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도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이 시장에서 큰 영향을 미쳤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신생아 특례대출은 미미한 수준"이라면서도 "아무래도 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이 특례보금자리론보다는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이송렬 기자.
서울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이송렬 기자.
서울 내에선 노원구를 비롯한 서울 외곽 지역이 정책 대출 상품의 수혜지로 꼽히지만, 이들 지역의 집값 회복은 아직 멀었다는 게 현지 공인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실제 집값 역시 큰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다. 일부는 최고점 대비 반토막 수준의 집값이 유지되고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상계동 '상계주공16' 전용 45㎡는 지난달 3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2021년 9월 기록한 6억2900만원의 절반 수준으로 가격이 내려왔다. 상계동 '상계주공7' 전용 41㎡도 지난달 4억8500만원에 손바뀜했다. 2021년 7월 기록했던 신고가 7억원 대비 2억1500만원 급락했다.

상계동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서울 외곽에서도 신생아 특례조건에 맞는 집을 찾는 게 쉽지 않다"며 "신생아 특례대출로 집을 구하는 수요는 있지만, 많지는 않다보니 집값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공인 중개 관계자도 "올해부터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도 적용돼 대출받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있지 않으냐"며 "대출 의존도가 높은 서울 외곽 지역은 집값이 당분간 지지부진할 것이란 뜻"이라고 전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