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도시 개발 트렌드는 ‘직(work)·주(live)·락(play)을 한곳에서 해결하는 고밀도 복합공간(콤팩트시티)’으로 요약된다. 건물 내에 상업·주거·문화시설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고, ‘금싸라기 땅’의 상당 부분을 녹지공간으로 꾸민다. 초고층 복합공간이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미국 뉴욕의 ‘허드슨야드’와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힐스’가 대표적 성공 사례다.

이르면 2030년 서울 도심 한복판에도 이 같은 ‘콤팩트시티’가 들어선다. 서울시는 최근 용산국제업무지구(옛 용산 정비창 부지) 밑그림을 10년 만에 다시 그리면서 뉴욕과 도쿄 개발 사례를 대거 반영했다. 100층 랜드마크 전망대, 입체녹지, 초고층 건물을 연결한 1.1㎞ 길이 스카이트레일(보행전망교) 등 차별화 요소를 곳곳에 넣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면적은 허드슨야드의 4.4배(50만㎡)에 달해 개발이 끝나면 글로벌 대도시 도심부 개발 사업 중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허드슨야드, 입지 좋고 현대적 공간…100여개 기업 '둥지'

'미래 용산' 세상에 없던 도시가 온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지하철 7번 라인이 지나가는 34번가의 허드슨야드역에 내리면 남쪽 고층 빌딩 사이로 벌집 모양의 독특한 건축물 ‘베슬’이 보인다. 베슬을 중심으로 ‘35허드슨야드’ ‘30허드슨야드’ 같은 주소가 붙은 허드슨야드의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다.

허드슨야드의 아이콘인 벌집 모양 건축물 ‘베슬’
허드슨야드의 아이콘인 벌집 모양 건축물 ‘베슬’
지난 1일 낮 12시 허드슨야드의 베슬과 인근 쇼핑몰은 평일임에도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맨해튼의 대표적 산책로인 하이라인을 거쳐 여행객뿐 아니라 로어 맨해튼의 직장인이 점심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방문객이 3만 명을 넘는 허드슨야드는 뉴욕의 대표적 사무공간과 쇼핑몰 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높이 46m의 베슬을 배경으로 허드슨강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은 허드슨강과 베슬 사이에 뉴욕 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의 웨스트사이드야드를 볼 수 있다. 롱아일랜드 철도의 차량기지로, 허드슨야드가 철도기지 위에 세워진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베슬을 둘러싸고 쇼핑몰인 30허드슨야드와 공연, 전시,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더셰드’가 자리 잡았다. 30허드슨야드에는 까르띠에, 롤렉스, 디올 등 명품부터 유니클로, 룰루레몬 등과 같은 중저가 제품까지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했다. 더셰드에서 올가을 막을 올릴 예정인 연극 ‘리어왕’은 배우이자 감독인 케네스 브래나가 연출과 주연을 맡아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허드슨야드 측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방문객이 1200만 명에 달했다.

허드슨야드는 2000년대 초 뉴욕에 본사를 둔 릴레이티드컴퍼니즈와 캐나다 토론토 기업인 옥스퍼드프로퍼티즈그룹 등 글로벌 부동산개발 회사의 기획으로 시작됐다. 이들 기업은 뉴욕시와 함께 철도 차량기지가 있던 ‘헬스 키친 사우스’ 지역을 허드슨야드로 개발하기로 했다. 허드슨야드는 맨해튼 미드타운 서쪽의 30번가와 43번가 사이에 있다. 2019년 완공된 1단계 개발에만 15억달러가 투입됐다. 약 10억달러를 투입하는 2단계 개발은 2026년 완공이 목표다.

허드슨야드 내 업무공간에는 글로벌 기업 100여 곳의 직원 5만여 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투자회사인 KKR, 블랙록도 입주했다. 미국 상업은행인 웰스파고와 방송 기업인 CNN, HBO도 허드슨야드에 자리 잡고 있다.

뉴욕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상업용 부동산이 부실 위험에 빠졌지만, 허드슨야드는 이 같은 분위기에서 비켜나 있다. 최고급 시설을 갖춘 오피스 공간 수요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은행인 웰스파고는 지난해 니만마커스가 들어와 있던 허드슨야드 20번지의 빈 곳을 5억5000만달러에 매입했다. 이 공간은 3개 층에 걸쳐 총 40만㎡에 달한다. 30허드슨야드에 입주한 웰스파고은행은 사무공간을 확장할 계획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허드슨야드를 계획할 땐 고급 주거공간에 기대를 걸었지만, 준공 후 최신 시설의 오피스에서 수익이 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허드슨야드의 오피스타워 3곳(10, 30, 55)은 공실이 거의 없다.

제프 블라우 릴레이티드컴퍼니즈 최고경영자(CEO)는 웰스파고의 사무공간 확장과 관련해 “허드슨야드의 현대적인 사무실과 환경이 혁신적인 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아자부다이힐스, 물 흐르듯 건축 설계…내·외국인 핫플 등극

'미래 용산' 세상에 없던 도시가 온다
작년 11월 24일 일본 도쿄 중심가 미나토구에 문을 연 초대형 상업시설 아자부다이힐스는 개장 3개월 만에 내·외국인이 즐겨 찾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 시설을 개발한 모리빌딩은 연간 3000만 명이 아자부다이힐스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자부다이힐스는 상업시설이라기보다 ‘도심 속의 작은 도시’에 가깝다. 3개의 초고층 건물과 아파트 단지, 서울 여의도 파크원타워보다 큰 오피스, 하남 스타필드와 맞먹는 상업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중심 건물인 모리JP타워 높이는 330m로 오사카의 아베노하루카스를 30m 차이로 제치고 일본 최고층 빌딩이 됐다.

아자부다이힐스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도심 재개발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 때문이다. 도시의 원래 모습을 가능한 한 보존하면서 활력을 주입하는 도시재생이냐, 허물고 새로운 도시를 탄생시키는 재개발이냐는 일본에서도 오랜 논란거리다. 그동안 도쿄 아자부와 롯폰기, 도라노몬은 일본 최고의 금싸라기 땅을 다투는 지역이지만, 서로의 흐름은 단절돼 있었다. 세 지역의 연결 고리인 아자부다이가 엉겨 붙은 핏덩이처럼 소통 흐름을 막고 있어서다. 모리빌딩은 2027년 일본인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65세 이상 고령자가 되는 인구 변화 등을 고려해 도심재생 대신 재개발을 선택했다. 아자부다이힐스 개장으로 아자부와 롯폰기, 도라노몬의 혈맥이 시원하게 뚫렸다. 도쿄 안의 ‘미래 도쿄’를 짓는 데 6400억엔(약 5조8400억원)이 들었다.

성숙기인 일본 경제와 고령자가 소비자의 중심이 되는 라이프 스타일 변화를 감안해 모리빌딩이 제안한 모델이 ‘콤팩트시티’다. 다양한 도시 기능을 한데 모아 가고 싶고, 살고 싶어 하는 ‘입체 녹원 도시’(버티컬 가든 시티)를 만드는 구상이었다. 그러려면 수백 명의 소유자로부터 부지를 확보해 초고층 빌딩을 올릴 필요가 있다. 총 개발기간 34년의 대부분을 소유자의 동의를 받는 데 쓴 이유다.

아자부다이힐스 부지 면적(8만1000㎡)은 일본 도심 재개발의 원조인 롯폰기힐스(11만6000㎡)의 70% 수준이다. 하지만 54~64층짜리 초고층 빌딩 3개 동을 올려 연면적(86만1700㎡)에선 롯폰기힐스(75만9100㎡)를 앞선다.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 연면적을 늘리기 위해 높이 330m의 JP타워를 추가했다. 이 공간에 오피스(21만4500㎡)와 쇼핑몰(2만3000㎡), 에르메스 까르띠에 불가리 등 명품업체 10곳과 150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웬만한 아파트 단지 규모인 1400가구의 주택과 122실짜리 최고급 호텔, 도쿄 도심 최대 국제학교, 종합병원 등이 이 작은 도시 안에 자리 잡았다. 6000㎡ 크기의 중앙광장을 포함해 전체 부지 면적의 37%(2만4000㎡)가 녹지다. 이곳에 심어진 나무 종류만 320가지다. 낮에는 2만 명이 근무하고, 밤에도 3500명이 거주하는 명실상부한 도시다.

아자부다이는 가파른 언덕이었던 지형을 최대한 살려 기존 풍경을 해치지 않았다.
아자부다이는 가파른 언덕이었던 지형을 최대한 살려 기존 풍경을 해치지 않았다.
아자부다이는 경사가 꽤 가파른 언덕이었다. 모리빌딩은 기존 풍경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언덕 지형을 고스란히 활용했다. 다구치 요시후미 모리빌딩그룹 설계부장은 “평면적인 건물을 지으면 어느 날 ‘쿵’하고 새로운 건물군이 들이닥치는 느낌이 들어 기존 마을과 단절감을 줄 수 있다”며 “지역적 정서를 먼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