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서 '퇴짜' 맞은 환자 밀려와 업무부담 갈수록 가중
'전화 뺑뺑이'까지 돌려 겨우 병원 찾는 환자·보호자 분통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이…" 환자 몰리는 공공·중형병원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환자들 생명이 먼저여야 하잖아요.

"
23일 오후 공공병원인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중환자실 앞에서 만난 박모(45)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친어머니처럼 모시는 지인이 지난 21일 급작스러운 장기 출혈로 구급차에 실려 갔지만 대학병원에서 입원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환자는 결국 개인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하루를 버텼지만 이튿날 새벽 끝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박씨는 "위궤양이 너무 심해서 출혈도 있고 신장이 많이 안 좋아 투석까지 받고 계시는데도 입원을 거부당했다"며 "웬만하면 대학병원에서 치료받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쪽으로 가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여기(서울의료원)로 왔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 자리에서 사망하셨을 것"이라며 "오늘내일하시는 분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이게 사람 죽으라는 거지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이…" 환자 몰리는 공공·중형병원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대형병원에 진료 차질이 빚어지면서 공공병원과 중형 규모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환자가 늘고 있다.

상급병원에서 밀려난 외래 또는 입원 환자들이 몰려드는 탓에 해당 병원 의료진의 업무 부담도 하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부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 전문의들이 빈자리를 메우는 형편인 강남구의 한 종합병원도 삼성서울병원 등 인근 상급 종합병원에서 밀려온 환자들까지 떠안게 되면서 우려가 적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수술실에 교수님 혼자 들어갈 수는 없고 간호사들도 대신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으니 전문의 2명이 들어가고 있다.

내 수술도 힘든데 당직까지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로 외과 환자를 중심으로 진료나 수술이 밀려서 왔다는 환자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외과 교수님들이 그런 업무를 흡수해가면서 하고 있는데 업무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 "지금이야 (큰) 차질이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할까 걱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공공병원과 중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는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혼란에 양해를 구하는 문구가 저마다 붙어 있었다.

이날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는 "비상진료 중입니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니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동대문구 삼육서울병원에는 '병원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진료시 혼선과 지연이 있다'는 취지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삼육서울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만난 구급대원 윤모 씨는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대부분 병원에서 의사가 부족해 환자 수용이 어렵다고 한다"며 "저희도 노원구 종합병원 두 곳에서 환자를 못 받는다고 해 여기(삼육서울병원)까지 왔다"고 했다.

이 병원 원내약국 관계자는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확실히 입원환자가 많아진 것 같다"며 "오늘도 세브란스병원이나 건국대병원에 다니던 분들이 오셔서 약을 받아 갔는데 큰 병원에서 진료받지 못해 이곳으로 오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이…" 환자 몰리는 공공·중형병원
중소병원(2차병원)에서는 '상태가 심각하니 상급병원(3차병원)으로 가라'는 안내를, 상급병원에서는 '받아줄 수 없다'는 안내를 받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80대 장모가 숨을 헐떡이고 걸음을 걷지 못하는 증상을 겪고 있다는 한 남성은 "폐 CT 검사 결과 상황이 너무 나빠져서 빨리 (상급병원) 입원이 필요하다는 2차병원 소견을 듣고 그제 서울대병원에 갔는데 병실도 없고 검사 진행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며 "결국 집으로 돌아와서 2차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음 달 안에는 입원이 될지 모르겠고 기약이 없다"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우선시하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배운 사람이라면 적어도 환자 생명을 담보로 정부와 싸우면 안 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돌연 뇌졸중 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왔다는 오모(36)씨는 온갖 병원에 전화를 하며 소위 '전화 뺑뺑이'를 돌다 삼육서울병원을 찾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머니가 어제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술에 취한 사람처럼 몸을 가누지 못해 고려대병원부터 여러 곳에 전화해 입원 가능 여부를 물었는데 파업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며 "급한 마음에 일단 1차병원에 갔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 겨우 이곳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제 동생도 의사지만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며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동생한테도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고 쓴소리를 했다"고도 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이…" 환자 몰리는 공공·중형병원
이날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나흘째에 접어들면서 주요 대형병원은 수술을 최대 50%까지 줄이는 등 의료 공백이 심화하고 있다.

23일 복지부에 따르면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전공의는 총 7천38명이다.

복지부는 이 중 5천976명에 대해서는 소속 수련병원으로부터 업무복귀 불이행 확인서를 받았다고 이날 밝혔다.

전날 오후 6시 기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새로 접수된 피해사례는 총 40건으로 수술 지연이 27건, 진료 거절이 6건, 진료예약 취소가 4건, 입원 지연이 3건이다.

기존에 접수된 149건과 합치면 환자 피해사례는 지금까지 모두 189건이 접수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