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n스토리] 23살 숙녀가 84살 노인이 되기까지…60년째 일기 쓴 서보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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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만 수십권…"앞으로도 제 인생 기록할 것"
"여보 당신, 당신이라고 부르는 소리도 처음이고 마지막 부르는 당신이에요.
당신과 만난 지 만 50년 된 오늘날까지 당신 너무 수고했어요.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백발 휘날리는 발걸음으로 추운 줄 모르고 걷던 그날들이 이제는 꿈이겠네요.
당신은 오늘부터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계십시오. 아내로서 마지막 부탁이에요.
"
경남 고성군 영오면에 사는 서보명(84) 씨가 2012년 2월 남편을 영원히 떠나보내던 날 쓴 일기 중 일부다.
그는 22살 결혼해 이듬해부터 시집살이를 시작하며 처음 일기를 썼다.
친구, 고향과 작별하고 시댁에서 첫 하루를 보낸 날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던 시절 등잔불 밑에서 한 자씩 써 내려간 것이 긴 역사의 시초가 됐다.
작성 연도와 월, 일은 물론 그날 날씨까지 정확히 남겼다.
80대가 넘은 지금까지 60여년 동안 적은 일기장만 수십권에 달한다.
일기는 흘러온 세월만큼이나 그 자체가 서씨 인생과 우리 사회의 역사다.
시집와 눈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때부터 남편의 술주정을 받아내고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 등까지 그 시절 우리네 일상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서씨는 "그땐 힘든 일이 많았어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어 넋두리 겸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며 "잠들기 전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쓰면 괜히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고 말했다.
12년 전 하나뿐인 남편을 영원히 떠나보낸 날도 잊을 수 없다.
서씨는 남편을 발인하던 날 남편을 향한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수첩에 빼곡하게 적었다.
'여보', '당신'과 같은 평생 불러보지 못한 말들도 편지 형식으로 쓰다 보니 자연스레 녹아 나왔다.
그는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을 "OO 아빠"나 '아이'(남을 부를 때 쓰는 방언)라고 불렀다.
화장(火葬)까지 마친 후 편지를 낭독하자 상조회사 직원이 감명받아 따로 코팅까지 해 서씨에게 건넸다.
서씨는 "그날 남편과 영원히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왠지 편지가 꼭 쓰고 싶더라"며 "생전에는 한 번도 여보, 당신이라고 못 불렀는데 지나고 보니 후회돼 편지에 썼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씨의 꿈은 일기장을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다.
'한 많은 여자'라는 제목도 나름 정해 놓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을 위해 앞으로도 일기를 쓸 계획이다.
서씨는 "수십 년 전부터 글을 매일 같이 써왔으니 분량은 넘치지 않을까 싶다"며 "머지않아 꿈을 이룰 수 있게 꾸준히 내 인생을 기록해가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당신과 만난 지 만 50년 된 오늘날까지 당신 너무 수고했어요.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백발 휘날리는 발걸음으로 추운 줄 모르고 걷던 그날들이 이제는 꿈이겠네요.
당신은 오늘부터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계십시오. 아내로서 마지막 부탁이에요.
"
경남 고성군 영오면에 사는 서보명(84) 씨가 2012년 2월 남편을 영원히 떠나보내던 날 쓴 일기 중 일부다.
그는 22살 결혼해 이듬해부터 시집살이를 시작하며 처음 일기를 썼다.
친구, 고향과 작별하고 시댁에서 첫 하루를 보낸 날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던 시절 등잔불 밑에서 한 자씩 써 내려간 것이 긴 역사의 시초가 됐다.
작성 연도와 월, 일은 물론 그날 날씨까지 정확히 남겼다.
80대가 넘은 지금까지 60여년 동안 적은 일기장만 수십권에 달한다.
일기는 흘러온 세월만큼이나 그 자체가 서씨 인생과 우리 사회의 역사다.
시집와 눈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때부터 남편의 술주정을 받아내고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 등까지 그 시절 우리네 일상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서씨는 "그땐 힘든 일이 많았어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어 넋두리 겸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며 "잠들기 전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쓰면 괜히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고 말했다.
12년 전 하나뿐인 남편을 영원히 떠나보낸 날도 잊을 수 없다.
서씨는 남편을 발인하던 날 남편을 향한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수첩에 빼곡하게 적었다.
'여보', '당신'과 같은 평생 불러보지 못한 말들도 편지 형식으로 쓰다 보니 자연스레 녹아 나왔다.
그는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을 "OO 아빠"나 '아이'(남을 부를 때 쓰는 방언)라고 불렀다.
화장(火葬)까지 마친 후 편지를 낭독하자 상조회사 직원이 감명받아 따로 코팅까지 해 서씨에게 건넸다.
서씨는 "그날 남편과 영원히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왠지 편지가 꼭 쓰고 싶더라"며 "생전에는 한 번도 여보, 당신이라고 못 불렀는데 지나고 보니 후회돼 편지에 썼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씨의 꿈은 일기장을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다.
'한 많은 여자'라는 제목도 나름 정해 놓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을 위해 앞으로도 일기를 쓸 계획이다.
서씨는 "수십 년 전부터 글을 매일 같이 써왔으니 분량은 넘치지 않을까 싶다"며 "머지않아 꿈을 이룰 수 있게 꾸준히 내 인생을 기록해가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