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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요즘 조마조마하다. '내 아파트 다시 짓는 김에 명품 단지로 짓자'는 마음이 굴뚝같은데, 명품 단지에 도움이 안 되는 공공시설을 서울시가 요구할까 봐서다. 새 아파트를 다시 짓다 보면 그 단지에 아파트만 들어서는 게 아니라 시가 요구하는 공공시설도 배치된다. 개발이익의 대가로 받아 가는 공공기여(기부채납)이다.
쉽게 말해 단지에 수영장이 들어서 집 근처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되느냐, 데이케어센터가 설치돼 주변 어르신이 주로 찾게 되느냐는 것이다. 여의도 한양에는 1~16층짜리 건물을 계획해 서울핀테크랩과 국제금융오피스가 입주하도록 했다. 집 근처로 핀테크 스타트업과 금융사가 입주해 고소득 직장인이 매일 출근하게 된다는 뜻이다. 공공청사 부지는 일단 공공용지로 해놓고 나중에 도시기반시설 현황을 정리해 건축심의 때 구체화하기로 유보했다.

공공기여는 여의도뿐 아니라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단지에서도 재건축 조합이나 추진위의 반대 측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문제 삼는 단골 메뉴로 꼽힌다. '우리라면 서울시와 협의해 더 나은 시설을 받아낼 수 있다'는 것. 사실 시는 추진 주체가 누군지는 관심 없다. 다만 조합이 제시한 아이디어가 좋으면 주민 선호에 맞는 시설이 놓일 가능성은 높아질 수도 있다. 압구정 현대는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과 단지를 한강으로 잇는 '보행교'가 제시됐다. 저출산 시대라는 점을 고려해 시가 운영하는 돌봄센터 아이디어가 일각에서 나오기도 했다.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으면 임대주택으로 채운다. 그런데 이런 공공기여 방안은 미리 주민들과 협의한 걸 텐데 왜 반발이 심한 걸까. 결정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공기여는 왜 있는 걸까
여의도 재건축을 보면 다른 지역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있다. '용도지역 상향'이 대폭 실현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용도지역이 높아지면 그 구역에 적용되는 용적률 상한선도 높아진다. 용적률은 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바닥면적 합)의 비율이다. 건물을 얼마나 더 높고 넓게 지을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 용적률이 오르면 재건축 후에 추가할 수 있는 가구 수도 증가한다. 조합원이 받아 갈 가구 수를 제외하고도 가구 수가 남으면 일반분양으로 돌린다. 분양수익 덕에 조합원의 분담금이 줄고, 때로는 환급도 받을 수 있다. 이를 보통 '개발이익'이라고 부른다.
가령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서는 용적률 최대치에서 150%포인트까지 더 주겠다고 하면서도, 상향분의 70%까지 공공기여분을 가져가겠다고도 한 게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용적률 증가분의 40~60%를 공공기여 총량으로 본다. 가령 여의도 한양처럼 제3종주거에서 일반상업으로 종 상향할 때 공공기여율을 40% 내외로 정해뒀다. 한양의 공공기여율은 44% 정도다. 여의도를 비롯해 성수전략정비구역 등이 높은 공공기여율 때문에 2011년부터 재개발·재건축이 무산됐었다.
기부채납과 공공기여는 같은 걸까
공공기여는 말 그대로 재개발·재건축 때 이익을 공공에게 돌려주는 방법을 통칭한다. 땅을 그대로 시에 넘길 수도 있고, 땅 위에 건축물을 지어 소유권을 이전할 수도 있다. 교통흐름이 원활하도록 도로를 단지에 내거나, 지역민이 단지를 돌아서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도록 공공보행로를 낼 수도 있다. 단지 주변 보행로를 넓히려고 '건축한계선'을 두거나 1층에는 공개공지를 조성해 지역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부채납은 공공기여의 한 방식으로 정리되곤 한다. 지방자치단체로 소유권을 넘기는 경우만 기부채납으로 보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민 입장에선 소유권 이전이 없는 공공기여가 유리하다. 땅의 소유권을 넘길수록 분양 가구 수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공보행로를 조성할 땐 주민에게서 소유권을 넘겨받지 않고 대지권만 설정한다. 공공보행로 같은 경우는 기부채납에 속하지 않는 이유다. 이미 공공시설이 충분하면 기반 시설 설치에 필요한 비용을 현금으로 납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는 공공기여에 대해 주민 불만이 없진 않다. 공공보행로가 대표적이다. 압구정3구역에서도 성수동~한강~3구역~압구정역으로 이어지는 공공보행로가 아파트 치안을 악화시킨다며 반발이 크다.
어떤 절차로 결정되나
많은 공공기여 방식 중에 주민이 취사선택으로 골라서 제안해도 되는 걸까. 재건축의 밑그림을 담은 지구단위계획에 어떤 방식으로 공공기여를 할지 '옵션'이 정해져 있다. 그런 공공기여 옵션들을 충족할 때마다 용적률 인센티브를 준다.주민들은 정비계획을 만드는 단계부터 구청과 사전협의를 진행한다. 구에서 정비사업을 담당하는 주택과나 도시계획과 등은 구에 필요한 공공시설을 담당 부서로부터 취합하기도 한다. 구와 주민들의 협의내용을 반영한 정비계획을 주민들이 구청에 내면 구청이 공식 심의를 거쳐 시에 제출한다. 이때 시 공공자산담당관은 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관련 부서에 수요를 받고, 자금조달 계획이나 추진 근거가 확실한 순으로 해당 부지에 어떤 공공시설을 지을지 결정한다. 물론 주민 의견이 우선 검토 대상이다. 지구단위계획에 있는 공공기여가 우선순위다.

시가 이미 관련 부서와 협의로 용도를 정해놨는데 주민들이 반발해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경우도 나타난다. 신속통합기획으로 추진 중인 대치 미도아파트는 신속통합기획 때 기부채납의 용도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저류조와 노인회관 등을 시가 관련 부서와의 협의로 잠정 결론 내고 기획안에 대한 주민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주민에게 통보했다. 당초 문화체육시설 등으로 계획을 준비 중이던 추진위가 난감해할 수밖에 없었다. 강남구도 주민 의견을 반영한 정비계획안을 시에 입안한 상태다. 시는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안 지키면 어떻게 되나
시와 조합이 '계약'을 맺어 기부채납을 결정해뒀는데 나중에 짓고 보니 약속한 용도가 아닐 수도 있다. 이땐 계약 위반으로 보고 도시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 하지만 계약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시점이 준공 때다 보니 실효성을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합이 공공보행로와 개방형 아파트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아 아파트를 지어놓고, 입주자대표회의가 담장을 설치하는 등 지역민들이 아파트를 지나다닐 수 없도록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때 다 지어놓은 아파트에 대해 건축허가를 취소하긴 어렵다. 그래서 위반건축물로 등재해 주택담보대출을 막아놓거나 이행강제금을 부여한다. 소유권 이전 계약을 맺을 때 미리 이행보증금을 요구하는 방법도 있다.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