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사무보조원이 정규직으로 인정받았더라도 정규직 행정원과 똑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는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사무보조와 행정원의 업무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고등법원 제6민사부(남양우 부장판사)는 공공기관인 A사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일하던 파견 근로자 20여 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최근 원심을 뒤집고 “A사의 행정원은 원고들의 비교대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행정원과 똑같은 수준으로 여겨졌다면 받았을 임금과 실제 지급받은 임금의 차액을 달라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원심 판단은 그대로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행정원은 기획, 평가 등 창의성이나 의사결정이 필요한 핵심업무를 했지만 사무보조원은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주로 했다”며 “작성한 문서 내용도, 업무에 관한 최종 결재권자도 다르다”고 밝혔다. 이어 “행정직에 지원하려면 학위와 공인어학성적이 있어야 하고 공개채용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사무보조원의 경우 특별히 요구되는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고속도로 수납원들의 “원청 사무기술직과 똑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법원에서 연이어 기각된 가운데 비슷한 판결이 내려지면서 기업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정부지법은 지난해 11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이 서울고속도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들의 임금차액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들은 “서울고속도로 4급 사무기술직과 똑같은 임금과 경영성과급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4급 사무기술직과 업무가 똑같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 수납원들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기업들은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삼표시멘트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대 10년 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결하면서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여기에 동종·유사 업무가 아님에도 비정규직·하청 근로자의 주장대로 임금 차액이 결정된다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다.

민경진/곽용희/김진성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