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든 구순 조각가의 열정, 세계적 화랑이 알아봤다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89·사진)은 1963년 말 프랑스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타지에서 가장 낯설었던 것은 언어도 음식도 아닌, 현지의 여성 예술가들이었다. 기본적인 조소 양식을 따라가기도 벅찬 그와 달리 파리 여성들은 이미 구성과 추상을 오가며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6·25전쟁 이후 모두가 힘들던 시절 얘기다. 현실은 대학을 막 졸업한 여성에게 특히 팍팍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여자가 무슨 예술이냐’는 주변의 눈총도 받았다. 하지만 예술을 향한 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김윤신 조각가는 1970년대부터 ‘기원쌓기’ 연작을 내놨다. 조각난 나무를 솟대처럼 쌓아 올린 작품들이다. 옛사람들이 안녕을 기도하며 만든 서낭당 돌무더기와 비슷한 형태다. 그는 나무토막을 쌓으며 간절히 빌었다. “그래, 난 세계적인 작가가 될 거야. 그리고 미술사에 내 이름을 남기고 싶어.”

20대 김윤신의 ‘기원’이 90세를 목전에 두고 현실로 이뤄졌다. 지난달 17일 그는 국제갤러리·리만머핀과 공동 소속 계약을 맺었다. 상업 갤러리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뿐 아니다. 오는 4월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 전시인 이탈리아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되며 국제 미술 무대의 중심에 들어섰다.

김윤신 조각가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제적인 화랑 두 곳과 동시에 계약하게 돼 영광스럽다”며 “‘김윤신’ 하면 떠오를 만한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고 했다.

지난 40여 년간 아르헨티나를 기반으로 활동한 김 조각가는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을 계기로 두 갤러리와 인연을 맺었다. “생애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찾았는데, 이런 큰 기회가 주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고령에도 그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깎는다. 무거운 목재를 손수 나르는 일이 쉽지 않을 테지만, 젊어서부터 일상처럼 한 작업이라 지칠 줄 모른다고 했다.

국제갤러리·리만머핀과 계약하게 된 것도 이런 꾸준함의 결과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넘어간 것도 도처에 널린 아름드리나무에 반해서였다. 현지에 연고가 없는 그는 직접 부에노스아이레스 현대미술관 문을 두드렸다. 좋은 재료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멕시코 브라질 등으로 무대를 옮기기도 했다.

전쟁 직후 값비싼 원목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1977년부터는 재건축 때 기존 기둥과 서까래를 얻어 썼다. 이렇게 제멋대로 생긴 목재는 오히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인생 2막’을 시작한 지금, 앞으로의 기원을 묻자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요새는 나무에 색과 그림을 입힌 ‘회화 조각’에 꽂혔어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집 울타리 수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작품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소녀처럼 들떠있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