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경제통' 늘어야 제2의 중대재해법 사태 막는다
“당내에 영향력 있는 기업인·경제인 출신 의원들이 더 있었다면 중대재해처벌법 논의 흐름은 달라졌을 겁니다.”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관련 논의를 지켜본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의원은 “당초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쪽으로 가닥이 잡혔는데 이수진 의원(비례)이 강하게 반대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며 “의원들 사이에 찬반이 팽팽히 갈리자 홍익표 원내대표가 유예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당초 의총 전까지만 해도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여야의 ‘극적 타결’로 유예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정부와 여당이 민주당이 협상 조건으로 제시해온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전격 수용했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 등 지도부도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당내 운동권 출신 강성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그동안의 여야 협상은 없던 일이 됐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에 합리적인 목소리를 대변할 경제통이 사라진 결과라는 해석이 나왔다. 산업·경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의원 수가 적을 뿐 아니라, 그나마 있는 경제통들도 운동권의 기세에 눌려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얘기다. 이수진 의원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을 지냈다. 서영교·김성주·강민정·조오섭 등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강하게 반대해온 의원들도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다.

경제통의 부재로 여야가 합의한 경제 정책을 민주당이 뒤집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12월 열린 본회의에 상정된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이 환경운동가 출신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의 반대토론으로 부결된 게 대표적이다. 경영난 해소를 위해 한전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에서 5배로 늘리기로 한 이 법안은 여야가 진통 끝에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양이 의원이 “이런 회사채 돌려막기로 (한국전력은) 적자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주장하자 의원들이 동요했고 법안은 본회의 문턱을 넘기지 못했다. 당시 입법에 참여한 민주당 한 관계자는 “여야가 여러 상황을 고려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의원 말 한마디에 뒤집힌 것”이라며 “대안 입법을 신속히 처리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 전력시장이 멈추는 사태가 벌어질 뻔했다”고 회상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21대 국회의원들의 출신을 전수조사한 결과 민주당 내 기업인·경제관료·경제학자 등 ‘경제통’ 출신 의원은 10명에 불과했다. 특히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대부분 운동권 출신 의원이 꿰찼다. 당내에서도 민주당에 경제통 의원이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