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세계 최고 韓 국회의원 vs 실속 없던 근대 英 하원의원
올해 4월 10일 대한민국 국회가 새로 구성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어떤 나라, 어떤 시대와 비교해도 최고라고 할 만한 보수를 챙기며 엄청난 특혜를 누린다. 그 혜택이 얼마나 달콤한지 국회의원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 심지어 여러 번 해본 사람도 또다시 하고 싶어 한다.

국회(National Assembly)라는 말은 프랑스식 명칭(Assemble nationale)을 옮겨놓은 형태다. 프랑스에 국회가 생긴 시기는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1789년이다. 그해는 미국에서 새로 출범한 의회가 가동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에 존재하던 13개 영국 식민지는 영국 왕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영국 제도를 상당 부분 이어받았다. 특히 영국에서 태동하고 유지돼온 의회제도는 새로운 공화국 헌정질서의 핵심이었다.

영국에서 의회(parliament)가 제도화한 때는 12세기다. 세금을 거두기 위해 나라 전역의 대지주와 교회 지도자들을 국왕이 거주하는 웨스트민스터로 모이게 한 대회의가 그 원조다. 시장 경제가 발전하자 중소 규모 지주 및 도시 상인들도 세금원으로 부상했다. 이들을 의회에 포함시킨 것은 13세기 말이다. 지방과 도시 유권자들이 선출한 대표자들은 귀족원(House of Lords·상원)과 구별되는 평민원(House of Commons·하원)을 구성했다. 귀족원 의원보다 경제적 형편이 현저히 떨어지는 평민원 구성원은 말을 타고 멀리 웨스트민스터까지 출장 가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들의 의회 참석은 특권이 아니라 국왕의 명령이었다. 좋든 싫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선거 과정은 매우 번거로웠다. 19세기에 몇 차례 선거법을 개혁하기 전까지 영국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부동산세를 낼 수 있는 성인 남성으로 국한됐다. 의회는 세금 징수를 결정하는 곳이니 거기에 대표자를 보낼 유권자들은 당연히 세금을 내는 주체여야 한다는 논리였다. 직접세는 부동산에 연계돼 있었다. 유권자 중에는 여러 지역에 부동산을 소유한 이가 많았다. 이들은 복수의 부동산 소재지에서 투표할 수 있었다.

후보들은 선거일이 지역마다 다른 경우 자신을 지지할 지주 유권자를 다른 지역에서 ‘모셔 왔다’. 지역 유권자들 대접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선거는 공개 구두 투표로 진행됐다. 떳떳하게 자기 의사를 밝히는 것을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로 간주했다. 유권자는 선거 관리 서기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구두로 밝힌 뒤 선택한 후보의 이름을 선포했다. 지지자들의 관리 비용은 선거 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

많은 돈을 들여 당선된다고 해도 보상은 미미했다. 세비는 한 푼도 없었다. 귀족원은 물론이고, 평민원도 경제적으로 자립 능력이 있는 사람이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이들에게 보수를 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중세 때부터 내려온 무보수 봉사의 원칙은 오랜 세월 유지됐다. 평민원 의원이 봉급을 받기 시작한 해는 1911년이다. 형편이 그렇다 보니 이미 가진 돈이 충분하거나 아니면 그런 사람의 후원을 받는 이들이 주로 선거에 출마했다.

평민원 의원의 특권도 많지 않았다. 의회 회기 중 한 발언에 대해 민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형사사건의 경우 의원직은 전혀 방패가 되지 못했다. 이렇듯 열악했던 근대시대 영국 평민원 의원의 처지에 비하면 오늘날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처지는 한없이 근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