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K콘텐츠란 무엇인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콘텐츠 수출액은 2022년 약 132억달러로 2차전지(100억달러)와 가전 수출액(80억달러)을 뛰어넘었다. 세계 곳곳에서 K콘텐츠 열풍이 몰아친 결과다.

새해 들어서도 낭보가 전해졌다. 지난 16일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인 에미상 시상식에서 8관왕에 올랐다. 이날 소셜미디어에선 ‘성난 사람들을 K콘텐츠로 볼 수 있느냐’는 요지의 글이 간간이 올라왔다. 감독상·작가상·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모두 한국계이니 K콘텐츠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들의 국적은 미국인이니 K콘텐츠로 보긴 힘들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K콘텐츠 수출 2차전지 추월

2022년 에미상 6관왕을 차지한 ‘오징어 게임’은 어떨까. 이 작품도 넷플릭스 오리지널이긴 하지만 황동혁 감독의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에 K콘텐츠로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세계 각국 제작자 간 협업 구조가 자리잡은 상황에서 무엇이 K콘텐츠인지 엄밀하게 정의 내리긴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콘텐츠의 ‘국적’보다는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누가 가져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콘텐츠 흥행의 과실이 어떻게 배분되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넷플릭스의 독식 구조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국내 영상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 넷플릭스는 △넉넉한 제작비 △사전제작 시스템 정착 △과감한 스토리 허용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 기회 제공 등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덕분에 2019년 ‘킹덤’을 시작으로 ‘지옥’ ‘D.P’ ‘지금 우리 학교는’ 등 글로벌 흥행작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의 IP는 넷플릭스가 가져갔다. 넷플릭스는 제작사 측에 제작비 대비 일정 비율의 수익만 지급할 뿐 추가 인센티브는 배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콘텐츠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K콘텐츠를 해외에 직접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배경이다.

규제 완화는 제자리걸음

“한국이 넷플릭스의 하청기지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비등하자 정부는 2022년 말 ‘디지털 미디어·콘텐츠산업 혁신 및 글로벌 전략’을 발표했다. 국내 OTT의 경쟁력 강화, 미디어산업 규제 혁신, K콘텐츠 세계화 등을 통해 ‘글로벌 미디어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작년 말엔 1조원 규모의 K콘텐츠 전략펀드 신설, 콘텐츠 제작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영상산업 도약 전략’도 내놨다.

업계에선 “방향은 제대로 설정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문제는 미디어·콘텐츠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 작업은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미디어·콘텐츠산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꼽힌다. 진입 규제, 소유·겸영 규제, 편성 규제 등이 촘촘하게 짜여 있다. 창의성이 핵심인 미디어·콘텐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일부 규제를 풀려면 법 개정 작업을 거쳐야 하는 만큼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추진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정부와 여당이 보다 속도감 있게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