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23일 사상 최대 규모로 증시안정화기금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장기간 이어진 증시 침체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불안정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부동산시장 침체에 더해 주가 급락으로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를 달래고, 증시를 이탈하는 외국인을 붙잡기 위한 긴급 대책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개선하지 않은 채 인위적인 부양책을 펴는 것으로는 증시를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해외 자금 이달에만 2조원 이탈

23일 홍콩의 한 건물에 항셍지수가 표시된 전광판이 켜져 있다. 이날 중국 정부가 증시 부양을 위해 사상 최대인 2조위안(약 372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화기금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항셍지수는 2.63% 급등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3일 홍콩의 한 건물에 항셍지수가 표시된 전광판이 켜져 있다. 이날 중국 정부가 증시 부양을 위해 사상 최대인 2조위안(약 372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화기금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항셍지수는 2.63% 급등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상하이·선전증시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지수는 작년 11.4% 하락했다. 올 들어서도 하락세가 가팔라지면서 한 달도 안 돼 6%나 떨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가 포함된 홍콩 항셍지수는 올 들어 12% 급락했다. 해외 자금도 중국 증시를 떠나고 있다. 올 들어 해외 펀드들은 중국 증시에서 16억달러(약 2조1406억원)를 순매도했다.

그 결과 홍콩증시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사상 처음 인도 주식시장에 밀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날 종가 기준 인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의 시가총액은 4조3300억달러(약 5784조8800억원)에 달해 같은 날 홍콩거래소 시가총액 4조2900억달러를 넘어섰다.

증시 부진은 중국 경제의 현주소를 반영한다는 평가다. 중국 경제는 지난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선언한 이후에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중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개월(작년 10~12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미·중 패권경쟁 격화에 따른 정책 리스크 증가도 중국에 대한 투자 선호도를 떨어뜨린 주요 요인이다. 작년 비구이위안의 채권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시작으로 촉발된 부동산시장 위기도 진행형이다.

2조위안 투입해 ‘급한 불’ 끈다

중국 정부가 투입하기로 한 증안기금 2조위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조성된 증안기금(8000억위안)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전날 리창 총리는 “(당국에) 증시 안정을 위한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다”며 고강도 대책을 예고했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대형 국영은행들은 증시가 급락세를 보이자 역내에서 미국 달러화를 대거 매도하는 등 위안화 방어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과거에도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산하 후이진투자공사를 활용한 국가 대표펀드를 조성해 증시에 개입했다. 2018년 4월과 2023년 10월 증시가 고전할 때 펀드를 통해 주요 종목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부양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에 추진하기로 한 대규모 증안기금 투입은 시장 예상을 뛰어넘은 조치라는 평가다. 장기간에 걸친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을 진정시키고,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극약처방이 불가피했다는 지적이다. 중국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 비중은 99%가 넘는다.

이번 대책이 하락세인 중국 증시의 흐름을 되돌릴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부동산 위기, 소비자심리 침체, 외국인 투자 급감, 중국 기업 신뢰 하락 등 중국 경제와 금융시장은 여전히 강한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며 “이번 조치가 증시 급락을 저지하기에 충분한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