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 유예 조건으로 느닷없이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시행일(27일)이 10일도 안 남은 다급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 개정안 처리를 공식 요청하자 ‘연내 담당 외청 설치’를 역제안한 모양새다.

정부 조직 신설은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다. 예산 소요는 별개로 치더라도 역할, 조직, 인력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이해관계자 간 광범위한 협의가 필수다. 이런 준비가 미비한데도 불쑥 정부 조직 개편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법안 처리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더구나 ‘외청을 약속하면 유예 여부를 한번 검토해보겠다’는 식의 고압적 태도다. 이쯤 되면 입법 갑질을 넘어 의회 독재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중대재해법 유예를 두고 민주당은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며 무수히 오락가락했다. 민주당이 선심 쓰듯 마지막으로 제시한 정부의 사과, 재정 지원, 2년 뒤 반드시 시행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정부가 이행한 게 불과 보름 전 일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국회에서 세 차례 사과하고 관련 예산 편성계획이 발표되고, 중소·영세사업자들은 ‘재유예 요청을 하지 않겠다’는 성명까지 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미흡하다’고 떼를 쓰더니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외청 설립이 필수조건이라며 또 말을 바꾼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제정 당시부터 ‘중대사고 예방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결과도 걱정한 대로다. 지난 2년간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한 결과 사망 등 중대 사고가 오히려 늘었다는 통계가 속출하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투성이 법안이 준비 안 된 중소·영세기업으로까지 확대 시행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근로자와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근로자 안전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고 공격했다. 하지만 무리한 외청 설립 요구로 중소기업이야 어찌 되든 말든 거대 노조와 보조를 맞춰 총선에서 재미 좀 보겠다는 속내만 드러내고 말았다. 끝없는 어깃장 행보로 영세사업가들을 애태울 요량이면 차라리 ‘법안 개정에 반대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 그게 최소한의 책임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