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 기자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거주의무를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의 신분으로 충족해도 될까요. 실거주의무 폐지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공회전을 거듭하자 이 같은 대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요. 당국은 불길이 더욱 번지기 전에 차단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도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이야기입니다.
둔촌 거주의무, 세입자로 신분 바꿔서 충족해도 될까 [집코노미 타임즈]
일부 소유주들을 중심으로 거주의무 우회 방안이 거론되기 시작한 건 이를 폐지하는 '주택법' 개정안 처리가 사실상 물건너갔기 때문입니다. 여야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국회는 총선 모드로 돌입했습니다. 5월 말이 지날 때까지 처리가 안 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됩니다.

세입자 신분으로 거주의무를 채우겠다는 발상은 점유개정의 개념과 유사합니다. 아파트 매매시장에서의 점유개정이란 집주인이 집을 팔고나서 퇴거하지 않고 세입자로 신분을 바꿔 계속 거주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주인전세, 주전세라고도 하죠. 집주인에게 계속 거주 의사는 분명하지만 주택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 등과 맞물렸다면 이 같은 편의를 협의하는 것이죠. 매수인도 직접 들어가 살 의향은 없었기 때문에 이에 응하면 점유개정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주택법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집에 대해 최초 입주가능일부터 들어가 살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소유권을 유지한 채 거주하라'는 말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법의 빈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점유개정 방식의 거주의무 충족이 가능하지 않겠느냔 말이 나오는 것이죠.
둔촌 거주의무, 세입자로 신분 바꿔서 충족해도 될까 [집코노미 타임즈]
국토교통부는 불가능하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부가 폐지하려는 조항이라도 법이 도입된 취지를 정면으로 반한다는 것입니다. 거주의무는 당첨자에게 주어지는 것인데 집을 매각하는 순간 당첨자로서의 지위도 사라지기 때문에 의무 또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서울 강동구청에도 이렇게 안내하고 있다고 합니다. 강동구는 올림픽파크포레온이 들어서는 곳이죠. 이 같은 방법이 가능한지를 묻는 민원이 적지 않았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쟁점이 될 만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형사처벌과 관련된 내용은 조문을 확대해석하지 않고 엄격하게 봐야 하는데, 거주의무 관련 조문엔 소유권을 유지하란 말이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수분양자가 거주의무를 채우지 못할 경우엔 LH가 해당 주택을 매입합니다. 그런데 LH가 거주의무 위반을 판단할 수 있는 주체는 아닙니다. 법원에서의 판결이 나온 이후 매입할 수 있는 것이죠. 과연 이 같은 사건이 생긴다면 법원은 어떻게 판시하게 될까요.

복잡해진 제도와 손발이 안 맞는 정책은 법의 빈틈을 두고 벌이는 공방전으로 번지는 모양새입니다. 세법이 꼬일 대로 꼬였던 시절에도 '최종1주택 파훼법'이 등장했었죠. 이를 뚫어내려는 투자자들과 막아내려는 국세청의 수싸움이 치열했는데요. 결국 제도가 아예 폐지되면서 치열한 공방이 헤프닝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비용을 들인 채로 말이죠. 제도의 난해함과 불안정성이 낳는 촌극을 이젠 그만 보고 싶습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이문규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