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20명 아는 놈들끼리 노조 만든다고?"…MZ 노조 생존법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네이버 지회장이 노조 만든다고 처음 찾아왔을 때, '너가 아는 사람이 몇명이냐' 그랬더니 '저 20명밖에 몰라요' (그러더라고요). 거기 직원 몇 천명 되잖아요. 그래서 20명 아는 놈이 무슨 노조 만든다고 오냐(고 했지요). 근데 이제 저희는 … (노조 설립) 주체만 흔들리지 않고 초기에 한 몇 달만 버텨주면 노동조합 꼴을 갖출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있어요. … 1000명 사업장에서 5명이 노조 만든다면 고립시켜 … 버리면 그냥 끝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SNS가 워낙 발달해서 그렇게 했다간 난리난다, 이런 믿음이 있는 거죠.”

최근 발간된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사무·연구·일반직 조직화 사례 분석' 보고서에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간부가 네이버지회의 창립 과정에 대해 밝힌 내용이다. 네이버 지회는 사무직 노조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8일 노동계에 따르면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전누리 연구원은 지난 12월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사무·연구·일반직 조직화'라는 이슈페이퍼를 통해 신생 사무직 노조의 특징을 분석했다. 화섬식품노조 산하의 SK하이닉스·LIG넥스원 사무·연구직 노조를 중심으로 연구했다.
사진=김범준 기자
사진=김범준 기자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제조업 산별 노조의 대표 격인 금속노조가 IT 분야 등 사무직 젊은 세대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조직화에 성공한 화섬식품노조의 사례를 벤치 마킹해 활로를 찾는 차원에서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전 연구원은 "금속노조의 조직 재생산을 위한 제조업 내 후속 세대 조직화 사업과 관련해 사무·연구·일반직에 대한 주목이 필요함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선 노조설립, 후 조합원 모집” 기존 노조와 차별

"화학섬유식품 분야의 산별노조에 IT와 게임업계 노조, 반도체 분야 사무직 노조가 왜 들어가 있나"는 질문을 가질 수 있다. 이들을 화섬으로 이끈 것은 네이버지회다. 네이버지회는 정의당의 '비상구'라는 노동 상담소를 통해 화섬식품노조와 처음 접촉했다.

당시 화학섬유식품 노동조합은 불과 수년 전까지 존립에 어려움을 겪던 민주노총 산별노조다. 다만 수년 전 파리바게뜨 노조가 가입하면서 세를 불리기 시작했고, 네이버에 이어 카카오 등 IT·게임 업계 등 사무직 노조들이 연이어 가입하면서 성장세를 자랑하는 산별노조로 거듭났다. 특히 IT·게임 분야 노조들이 화섬식품노조에 갖는 지분은 절대 작지 않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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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서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지회는 2018년에 창립됐다. 노조 설립 추진 단계에서 화섬식품노조 네이버 지회가 결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네이버 지회장을 접촉했다. 그를 통해 화섬식품노조에 연결됐다. 2021년 설립된 LIG넥스원 지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화섬식품노조에 가입해 세를 키웠다.

이 두 노조의 특성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한 전누리 연구원은 "화섬식품노조라는 기존 민주노총 산별노조의 지원·지도를 통해 조직화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 제조업 노조와 달리 몇 가지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직을 위해 온라인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 특성"이라며 "다수의 노동자들이 물리적으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전통적 제조업과 달리 개별적으로 분산돼 업무를 수행하는 사무연구직 사업장의 특성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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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단기간의 준비 끝에 초동주체, 특히 소수의 인원이 먼저 노조를 설립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등을 통해 홍보하는 방식도 타 노조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이는 금속노조 같은 기존 노조가 장기간 준비를 거쳐 어느 정도의 인원을 확보한 후 노조 설립을 진행하는 방식과 대조적이다.

전 연구원은 "기존 전통적 조직방식과 대조적으로 단기적 준비 끝에 선 노조설립-후 조직 확대 방식이 이용됐다"며 "이런 조직화 방식은 그간 화섬식품노조가 IT 기업 및 게임업계의 노조를 조직화했던 방식이 적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업하면 바로 공장이 중단되는 생산직과 다른 사무직 노조에 대한 사측의 느슨한 대응도 조직화 성공에 기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뷰에 응한 화섬식품노조 간부는 "IT업계의 경우 개발과 사업에 주력하며 인사·노무 관리가 약해 탄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LIG넥스원 지회처럼 제조업 기술사무직 사업장은 생산직에 대한 노무 관리 기조와 방식이 이어지며 노조에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 연구원은 "LIG넥스원 및 SK하이닉스 지회 조직화 사례에서는 기존 재벌사나 대기업 내지 제조업 사업장에 비해 사측의 대응과 탄압이 덜했다"고 분석했다.

사무직노조, 집단성 발휘 힘들어 … 한계점도

연구에서는 사무직 노조의 특성적 한계도 지적됐다.

온라인 조직 구성은 장점이지만 단점이 되기도 한다. 전 연구원은 "온라인 공간은 노동자 및 노동조합에 유리한 공간으로 섣불리 간주할 수 없고 사측 역시 개입할 수 있으며, 상호작용 속에서 여론이 형성되는 하나의 장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생산직 노조와 달리 조합 활동에 다소 소극적인 것도 문제다. 전 연구원은 "노조 가입 및 조합원의 참여도가 저조한 것은 현재 다수의 노조가 경험하고 있는 일반적 현상"이라며 "그러나 사무·일반·연구직의 경우 화섬 식품노조 중앙 간부는 작업 구조의 특성상 제조업 생산 현장과 달리 개별화돼 집단성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조합원들의 특성에 대해서도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해결을 요구하기보다는 누군가가 대리해주길 바라는 특성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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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노조답게 부서별로 혹은 연령층에 따라 다양한 요구가 제기된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조합원의 다양한 요구가 분출되는 상황도 변수다. 전 연구원은 "어떤 요구를 우선순위로 설정할 것인지 조율하고, 또 그러한 결정에 대해 조합원을 설득하고, 그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집행부에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