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이 조직 축소에 나선 건 그동안 방대해진 조직을 정비하는 동시에 지원 부문보다 사업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SK그룹은 캐시카우인 통신·석유화학·배터리 분야 부진이 내년에도 지속되면서 그룹 전체적으로 저성장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단독] SK 수펙스 인력 감축…팀장도 현장 보낸다
이미 배터리·바이오·반도체(BBC)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한 상태여서 조직 효율화와 함께 내실을 다지기 위한 측면도 있다. SK그룹 고위 임원은 18일 “그룹 차원에서 조직 슬림화를 요구한 건 아니고, 각 계열사가 내년 경영 여건에 따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직과 인원을 축소하기로 한 곳은 그룹 내 최고의사협의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비롯해 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200여 명인 협의회 소속 인원을 100명대 중반으로 줄이는 안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의사협의기구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투자부문 등을 지주회사인 SK㈜로 넘기면서 인원을 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의 투자총괄 역할을 하고 있는 SK㈜는 인력을 20%가량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장용호 사장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 사장은 최근 임직원에게 효율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300여 명 가운데 최대 60여 명을 다른 계열사로 전환 배치해 조직을 슬림화할 예정이다.

그룹 관계자는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투자 일부를 넘겨받는 SK㈜가 그룹 주도의 투자 기능을 재조정하는 것”이라며 “그동안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 온 만큼 잠시 숨을 고르면서 중간 점검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번 주력 계열사 조직개편안의 특징은 팀장 감축이다. SK그룹은 팀장을 PL(프로젝트 리더)이라고 부르는데, 그동안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팀장 역할을 하는 PL도 크게 늘었다.

SK텔레콤의 경우 지난 6월 말 기준 정규직 직원 5200여 명 가운데 팀장 역할을 하는 PL이 500여 명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도 정규직 1500여 명 중 팀장이 120명 정도다. “임원과 생산직을 제외하면 팀장 1명에 팀원이 2~3명인 팀도 수두룩하다”(SK그룹의 한 임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임원은 60여 명, SK텔레콤의 임원은 120여 명이다.

SK텔레콤은 지난 15일 조직 개편에서 팀장급을 기존보다 10% 줄였다. SK이노베이션은 팀장을 최대 20% 줄인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중간지주사로서 정예화·전문화한다는 원칙에 따라 각 부서와 팀에 이런 방침을 전달했다”며 “팀장 보직을 떼면 사업장으로 이동해 현업을 강화한다는 게 이번 조직 개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팀장이나 조직 축소가 목표만큼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조직과 인력을 줄인다는 목표를 정해도 현장의 의견을 듣고 나면 당초 목표보다 대폭 축소되는 게 다반사”라며 “조직 내 저항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SK텔레콤도 당초 팀장급을 20% 가까이 줄이겠다는 목표를 정했지만 기껏 확보한 인력이 경쟁사로 이직할 가능성을 감안해 목표의 절반만 축소했다.

SK하이닉스와 SK E&S의 경우 반도체와 수소 등 신사업 추진 과제가 여전한 데다 인력도 부족해 조직 개편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김형규/김재후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