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셋값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역전세’(계약 당시보다 전셋값 하락) 공포가 드리우며 세입자가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에 직면했다. 최근에는 가격이 다시 오르면서 전세대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격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고 등락 폭도 큰 전세 중심으로 짜인 국내 임대차 시장 구조가 서민의 주거 불안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021년 1월 4억8636만원에서 작년 동기 6억3424만원으로 뛰며 1년 새 30% 급등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고금리 지속으로 올해 1월 5억4346만원까지 하락하며 1년 전 대비 14% 떨어진 데 이어 5월 5억1072만원으로 내려갔다. 6월 이후 반등해 9월 5억2024만원까지 회복했다.

최근엔 지역과 개별 단지 등에 따라 혼조세가 펼쳐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면적 84㎡ 전셋값은 9월 12억~12억5000만원 선에서 형성되다가 지난달 13억원대로 올라섰다. 단지 인근에 이달 6702가구 규모의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가 입주하는데도 전셋값이 강세를 보였다. 수요자 선호도가 높은 지역인 데다 내년 입주 물량이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전셋값 상승세가 펼쳐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 전용 49㎡는 8월만 해도 2억2000만~2억3000만원에 전세 세입자를 받았다. 이달 초엔 보증금이 2억450만원까지 떨어졌다. 2021년 고점을 찍었을 때 체결된 계약의 갱신 주기가 도래하고 있어 역전세난 우려가 여전한 단지도 적지 않다. 이렇게 금리와 정부 정책, 입주 물량 등에 따라 전세가가 불과 몇 달 안에 수억원씩 출렁이면서 세입자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전세는 기본적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간 사적 계약이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위험 고리로 꼽힌다. 최근 빌라 시장을 강타한 전세사기, 깡통전세 등의 이슈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확인된 전세사기 피해는 7590건에 달한다.

피해자 구제는 미흡한 실정이다. 정부가 전세사기 주택의 경·공매 절차를 유예한 건수는 726건이다. 하지만 최근 강제경매 절차를 재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피해자가 연 1~2%대의 저금리 대출을 받기도 쉽지 않다. ‘임차인 버팀목 대출’ 승인 건수는 130건(168억9000만원)으로, 신청 건수(378건·471억100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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