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시간이 화폐인 세상
커피 1잔 4분, 버스요금 2시간, 스포츠카 1대는 59년. 2011년 개봉한 SF영화 ‘인타임’에서는 시간이 화폐이자 에너지인 세상을 보여줬다. 이 영화에서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잔여 시간 1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사고 세금도 시간으로 낸다. 일을 하면 월급으로 시간을 제공받는다. 주어진 시간이 모두 없어져 ‘0’이 되면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모두가 빠르게 움직이고 아무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시테크’라는 개념이 있다. 시간을 돈으로 인식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시간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도 시테크를 한다. 대한민국은 1960년대 이후 그야말로 초스피드로 경제를 성장시켜 우리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 놓은 초스피드 국가였음은 우리도, 세계도 인정하는 바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속도가 중시되는 시대에 ‘빨리빨리’는 한국의 경쟁력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시간이 점점 더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세계 각국은 국민의 시간 사용 현황을 주기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우리도 국민이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생활시간조사’를 1999년부터 5년마다 시행하고 있다. 생활시간조사는 우리 국민의 시간 활용 패턴을 통해 국민의 생활 방식을 알아보고 새로운 정책 수요를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국가통계조사다.

생활시간조사 결과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남녀의 가사 노동시간이다. 2019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자는 56분, 여자는 3시간13분으로 여성의 가사 노동시간이 남성보다 137분 긴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민의 54.4%는 평소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식사 시간으로 조사됐다. 주말 오전은 밀린 잠을 자고 오후나 저녁에는 TV 시청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등 다양한 우리 삶의 모습을 이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모순처럼 들리지만,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이었다. 빨리빨리 서두르더라도 방향과 목적의식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초스피드로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면서 견지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다. 내년에 5년 주기의 생활시간조사가 시행된다. 그간 여름, 가을, 겨울 세 차례만 조사하다가 예산을 좀 더 투입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차례에 걸쳐 조사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를 통해 대한민국과 국민이 천천히 서둘러 성공에 이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국민들이 생활시간조사에 적극 협조해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