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하라" 압박 입장서 급선회…홍콩 "일정상 못가…대신 재무장관 참석"
미중 정상회담 걸림돌 될라…'美제재' 홍콩 행정수반 APEC 불참
미국과 중국이 이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공동 노력에 합의하자 홍콩이 입장을 급선회해 미국 제재 대상인 행정수반 대신 재무장관을 APEC 정상회의에 보내기로 했다.

미중 간 '해빙 무드'에 걸림돌이 될까 염려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정부는 10월 31일 저녁 성명을 통해 "홍콩은 오는 15∼1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참석 초청을 받았다"며 "그러나 일정 문제로 존 리 행정장관은 참석하지 못하며 폴 찬 재무장관이 리 행정장관을 대신해 참석할 것이라고 답신했다"고 밝혔다.

리 행정장관이 일정상 이유로 APEC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발표는 앞서 공개된 중국과 홍콩의 입장과는 정반대다.

홍콩 정부는 그간 이번 APEC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미국이 리 장관을 APEC 규정에 따라 초청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중국 정부도 지난 7월 미국이 리 장관의 입국을 금지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규칙 위반이자 약속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는 복수의 미국 관리를 인용해 미국이 APEC 정상회의에 리 장관의 참석을 금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2020년 6월 중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자 이에 반발해 그해 8월 홍콩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시민의 집회·표현의 자유를 훼손했다며 홍콩 및 중국 관리 11명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리 장관은 당시 홍콩 보안장관으로서 해당 11명에 포함됐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자국 제재 대상인 리 장관을 미국 땅에 들여서는 안 된다며 그의 입국 금지를 촉구했다.

이후 홍콩에서는 리 장관이 과연 샌프란시스코에 갈 수 있을지가 관심사였다.

그런 상황에서 리 장관이 정작 초청받았음에도 돌연 일정상 문제로 APEC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밝힌 것은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이 내린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홍콩 정부의 성명은 중국 외교수장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 등을 만난 후 나온 것이다.

왕 부장의 방미는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정지 작업으로 해석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일 "리 장관이 APEC에 미국의 제재 문제보다는 일정 문제로 참석하지 못한다고 발표한 것은 미중 관계 안정화 필요성을 고려할 때 민감한 상황을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어 "홍콩이 리 장관의 APEC 참석 불가 문제를 확대하거나 호전적으로 나간다면 미중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관측통들은 말한다"고 덧붙였다.

홍콩 정치평론가 소니 로는 SCMP에 "리 장관의 APEC 불참은 제재에 따른 실용적인 조치"라며 "홍콩 정부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비교적 정중한 외교적 에티켓을 구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과 미국은 여전히 홍콩 문제에 이견이 있지만 그것은 작은 문제이며 관계를 위한 기반 다지기라는 더 큰 필요에 (홍콩이)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며 "중앙정부는 큰 그림에 집중해야 하고 대만과 경제 문제 등을 미국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