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0월 25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한 재계 원로들.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회장(맨 오른쪽)이 정주영 현대 창업주 등 원로들과 삼성전자 사업장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출처:호암자전
1982년 10월 25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한 재계 원로들.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회장(맨 오른쪽)이 정주영 현대 창업주 등 원로들과 삼성전자 사업장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출처:호암자전


"삼성이 진출하면 한국의 전자업계는 다 망한다는 말이 나왔다. 경쟁사는 물론 국회의원까지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 저지 운동을 맹렬히 전개했다."

1969년 어느 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고민이 깊었다. 전자산업 진출을 타진했지만, 정치권에서조차 반대가 나왔다고 자서전인 호암자전에 적었다. 좁은 한국 시장을 높고 경쟁만 치열해지고, 삼성이 전자산업에서 성과를 낼지 의구심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안팎의 반발에도 그해 1월 13일 삼성전자는 출범했다.

출범 첫해는 초라했다. 삼성전자 직원 수는 36명에 적자를 봤다. 하지만 54년 동안 이 회사의 도약 폭은 남달랐다. 현재 매출은 300조원을 돌파했고 직원 수는 27만명을 웃돈다.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회장(왼쪽)이 1978년 8월 25일 열린 삼성 해외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왼쪽 두번째)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 출처:호암자전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회장(왼쪽)이 1978년 8월 25일 열린 삼성 해외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왼쪽 두번째)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 출처:호암자전
삼성전자는 1일 오전 경기도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한종희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54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삼성전자는 1969년 1월 13일 '삼성전자공업㈜'으로 출발했지만, 1988년 11월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한 이후 창립기념일을 11월 1일로 바꿨다.

1969년 삼성전자의 출범 첫해는 '구멍가게'나 다름없었다. 첫해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3700만원, -400만원이었다. 1958년 금성사로 가전사업에 진출한 LG전자보다 11년 뒤처진 출발이었다. 1980년엔 오일쇼크 여파로 55억원 순손실을 냈다. 하지만 이후 지난해까지 42년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갔다. 작년 순이익은 9조15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매출은 302조2314억원으로 출범 당시와 비교하면 1억배나 증가했다.

지난해 말 국내외 임직원은 27만372명으로 출범한 첫해 직원 수(36명)에 비해 7510배나 늘었다. 삼성전자는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직장 평가'에서 4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를 앞세운 삼성은 2002년에 국내 재계 서열 1위에 오른 이후 단 한 번도 정상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협력사로부터 219조8000억원 규모의 물품·서비스를 구매했다. 한솔케미칼과 솔브레인, 영풍전자, 파워로직스, 비에이치 등으로부터 각종 원재료와 장비를 사들이면서 국내 산업 생태계 조성을 뒷받침했다. 지난해 인건비로 37조6000억원을 지출하면서 가계 소비 등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삼성전자는 1969년 출범한 이후 가전 대중화에 앞장섰다. TV 등의 가격은 낮췄고 품질은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사진은 1988년 삼성전자 컬러TV 광고 사진.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1969년 출범한 이후 가전 대중화에 앞장섰다. TV 등의 가격은 낮췄고 품질은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사진은 1988년 삼성전자 컬러TV 광고 사진. 삼성전자 제공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전자 사업에 진출한 배경에 대해 "기술 노동력 부가가치 내수 수출 전망 등 여러모로 보아 우리나라 경제단계에 꼭 맞는 산업"이라며 "삼성이 이 산업에 진출해 국내에서 전자제품의 대중화를 촉진하고 수출전략상품으로 육성하는 선도적 역할을 맡아 보자"고 적었다.

국내 가전의 대중화를 이끈 데 대해서도 상당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병철 회장은 "전자 사업 출범을 앞두고 흑백 텔레비전값은 웬만한 봉급생활자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비싼 수준이었다"며 "물가의 상승 속에서도 전자제품만이 해마다 그 값이 오히려 내려갔는데, 경쟁사와 선의의 경쟁을 해온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