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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는 지구상에서 국내에서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제도다. 어느 정도 목돈을 갖고 있다면, 월세에 비해 주거부담이 적으면서 최소 2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어 임차인 입장에서 장점이 적지 않다. 임대인도 전세보증금을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고, 임대료 미납 리스크를 덜 수 있어 전세를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전세는 기본적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간 사적 계약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임차인이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근본적 불안정성을 지니고 있다. 올해 초 전국 각지에서 ‘전세 사기’ 문제가 터지며 비(非)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세 기피 현상이 짙어졌다. 지금도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최근 펴낸 ‘전세의 월세 전환 가능성 점검’ 보고서를 바탕으로, 향후 전·월세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짚어봤다.
금리 급등·전세사기에 월세 인기
전·월세 선호도가 크게 출렁인 건 과거에도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로 주택 매매시장이 위축되면서 월세 선호 현상이 강해졌다. 통상 전세는 향후 집값이 올랐을 때 기대되는 시세차익을 기반으로 유지된다. 하지만 당시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서 전세시장도 점점 쪼그라들게 됐다. 저금리 장기화로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맡겨놨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 줄어든 것도, 임대인의 월세 선호를 키웠다.
최근 들어서도 월세 선호가 다시금 두드러졌다. 2020년 7월 전월세 상한제 등 임대차보호법 시행의 여파로 전세가격이 가파르게 오르자, 상승분의 일부를 월세로 돌리려는 수요가 늘었다. 작년 하반기 금리가 급등하며 전세대출 금리가 전·월세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비율)보다 높아지자 세입자 입장에서 월세를 선택하는 게 더 유리해졌다. 올해 들어선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돌아 세입자가 보증금을 날릴 처지에 놓인 경우) 이슈로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대두된 것도 전세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빌라는 월세 선호 이어질 듯
그렇다면 앞으로도 월세 선호 현상이 지속될까. 주거 유형과 연령대, 지역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띨 것이란 게 이 보고서의 관측이다. 먼저 전세 사기가 주로 일어났던 수도권 빌라 시장은 월세 선호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로 인해 세입자가 월세 물건을 찾고 있어서다. 그동안 빌라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비중은 70%대로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최근엔 50%대까지 감소했다.
빌라 전세에서 월세로 갈아타더라도 세입자 입장에서 주거비 부담은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빌라 등 비아파트 거주자의 상당수가 20대 1인 가구다. 서울 빌라의 평균 전세보증금은 2억2000만원 수준이다. 이를 월세로 환산할 경우 매달 지불해야 하는 주거비용은 86만원이다. 이는 20대와 1인 가구 중 소득 1분위(월평균 소득 100만~120만원 정도)를 제외하고 대부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세입자가 목돈을 보호할 수 있는 월세를 선택할 유인이 크다는 분석이다.
중대형 아파트는 전세 선호
아파트 상황은 어떨까. 소형 아파트는 빌라와 비슷하게 월세 선호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전용면적 60㎡ 미만은 총 6만건 정도였다. 이 가운데 50%가 월세였다. 빌라 시장에서 전세 사기 이슈가 터지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식되는 소형 아파트로 수요가 몰렸고, 보증금 보호를 위해 월세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소형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격은 3억6000만원 정도다. 월세 전환 때 주거비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도 한몫한다.
주거비 부담이 만만치 않아 월세로 돌리기가 현실적으로 적잖은 부담이 된다는 평가다. 이들은 ‘내 집 마련’에 관심이 많은 계층이기도 하다. 목돈을 맡기고 향후 돌려받을 수 있어 자가 주택 마련의 디딤돌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전세 수요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파트는 빌라에 비해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적기도 하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