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전세사기로 전세 보증보험을 담당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재무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올 8월까지 보증보험을 악용해 악성 임대인이 떼먹은 전세보증금만 1조714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HUG는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보증보험 가입 기준인 전세가율을 하향한 데 이어 국회에선 보증 배수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HUG의 재무 건전성 강화 조치가 주거 취약계층의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월까지 대위변제액 1조7143억원

HUG, 최악 적자…'주거 안전판' 흔들린다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8월까지 ‘악성 임대인’으로 분류되는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 대신 세입자에게 돌려준 전세금(대위변제액)은 1조7143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1935억원에 그친 대위변제액은 2021년 5199억원, 지난해 1조219억원까지 늘었다. 올해는 2조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위변제액 중 회수된 금액은 1674억원으로, 9.76%에 그쳤다.

HUG의 대위변제액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전세사기 여파 때문이다. HUG는 전세금을 세 번 이상 변제한 집주인 중 최근 1년간 보증 채무를 한 푼도 갚지 않은 사람을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로 지정한다.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이 HUG로부터 받은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 현황’에 따르면 2020년 83명이었던 악성 임대인은 2021년 157명, 지난해 233명까지 늘었다. 8월 기준 악성 임대인은 374명으로 집계됐다.

대위변제액이 증가하며 HUG의 재무 건전성은 급격히 악화했다. 상반기 누적 순손실은 지난해 같은 기간(1847억원)보다 7배가량 늘어난 1조3281억원에 달한다. 올해 말 순손실 예상액은 3조4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HUG 노조는 “이대로라면 초유의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보증 허들 높이고 보증 배수 확대하고

HUG의 손실 확대가 불가피해지면서 정부와 국회에선 각종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당기순손실이 커질 경우 HUG의 자본금이 줄면서 보증 기능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HUG는 전세 임차인을 보호하는 보증뿐만 아니라 주택 공급에 필요한 기업 보증도 수행한다. 다만 주택 공급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은 8월까지 1조1637억원만 실행돼 한도(15조원)의 7.8%밖에 집행되지 않았다. 부동산 PF 보증을 확대하라는 요구가 지속되는 배경이다.

정부는 HUG의 보증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달 주택도시기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보증 한도를 자기자본의 60배에서 70배로 높였다. 또 올해까지 3800억원, 내년까지 7000억원을 추가 투입해 자본금 확충에 나설 예정이다. 국회에선 70배인 보증 한도를 90배까지 상향하는 ‘주택도시기금법’ 일부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내년부터 회계 기준이 달라져 HUG의 보증 배수가 70배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HUG 역시 100%였던 전세 보증보험 전세가율을 90%로 낮추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에선 HUG의 재무 건전성 회복 대책이 주거 취약계층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전세가율 하향 탓에 보증보험 가입 거절 건수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조오섭 민주당 의원은 “HUG가 전세가율 하향, 공시가격 적용 비율 하향 등 서민의 삶은 고려하지 않은 채 손쉬운 방법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경·공매 지원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국토교통부가 전세라는 사적 계약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경·공매 지원 방식을 택했다”면서도 “HUG 내 전세사기 피해자 경·공매지원센터의 지원 실적이 총 223건인데 경·공매 신청은 10건에 불과해 피해자에게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유오상/서기열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