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아트가 조각투자 상품으로 준비했다가 철회한 스탠리 휘트니의 ‘Stay Song 61’.
투게더아트가 조각투자 상품으로 준비했다가 철회한 스탠리 휘트니의 ‘Stay Song 61’.
“단돈 1만원으로 피카소의 진품 그림을 산다.”

미술품 조각투자 회사들이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투자자를 끌어모은 것은 2018년부터였다. 명작의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르니, 여러 사람이 공동 구매한 뒤 작품을 되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그럴듯한 설명이 뒤따랐다.

때마침 2020~2021년 미술시장이 호황기에 들어가면서 미술 투자 수익률이 치솟자, 시중의 돈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조각투자를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으로 인정하며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 그때만 해도 “미술품 조각투자 전성시대가 조만간 열릴 것”이란 전망에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1호 조각투자 상품’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8월 미술품 조각투자 업체 중 처음으로 금융당국에 증권신고서를 낸 투게더아트(서비스명 아트투게더)는 제출 20일 만에 신고서를 자진 철회했다. 9월까지 증권신고서를 내겠다던 테사와 서울옥션블루(서비스명 ‘소투’), 열매컴퍼니(서비스명 ‘아트앤가이드’) 등도 일정을 연기했다. 미술품 조각투자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문제는 ‘미술품 가격 산정’

조각투자 상품을 만들어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은 주식시장에 기업을 상장(IPO)하는 것과 비슷하다. IPO 작업의 핵심은 ‘기업 가치’, 다시 말해 공모가를 제대로 산정했는지 여부다.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들여다보는 대목이다. 그래야 일반 투자자가 가치를 뻥튀기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각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가치가 제대로 매겨졌는지다. 하지만 미술작품의 적정 가치를 산정하는 것은 기업 가치 평가보다 훨씬 어렵다. 같은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도 제작 연도와 크기, 소장 이력과 구입처, 시장 상황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서다. 일반화할 기준이나 정량적인 평가 지표도 없다. 최근 몇 년간 경매에서 비슷한 작품이 팔린 기록을 참조해 대략 추측할 뿐이다. ‘부르는 게 값’이니 초짜 투자자가 무턱대고 샀다간 바가지를 쓰기 십상이다.

투게더아트가 금융당국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게더아트는 미국 작가 스탠리 휘트니의 ‘Stay Song 61’ 가격을 7억2000만원으로 산정했다. 지난 10년간 경매 기록을 참조했고, 믿을 만한 거래처에서 구입한 점을 감안해 가치를 평가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술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든 걸 감안할 때 너무 높다”는 의견이 미술계 일각에서 나오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정답이 없는 만큼 미술품 가격은 누가, 어떤 근거로 매겼는지가 중요하다. 이번 작품 가격 산정은 한 감정평가법인이 맡았는데, 이 과정에서 투게더아트의 모회사인 케이옥션이 자문을 제공한 게 문제가 됐다. 투게더아트 관계자는 “케이옥션과 투게더아트는 서로 분리된 법인인 만큼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도 문제 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누가 봐도 이해상충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객관적인 평가 방안 마련해야”

테사와 서울옥션블루, 열매컴퍼니도 투게더아트와 마찬가지로 가격 산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9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모두 10월 이후로 연기했다. “연내 제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믿을 만한 기관에 가격 감정을 의뢰하고 싶지만, 맡길 데가 없다”는 게 미술품 조각투자 회사들의 하소연이다. 한 조각투자 회사 관계자는 “법적 요건을 충족하려면 감정평가법인에 미술품 감정을 맡겨야 하는데, 대부분 감정평가법인이 부동산 전문이라 미술은 모른다”고 했다.

해외처럼 미술품 전문 감정평가사에 감정을 맡기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전문성 없는 감정평가기관에 미술품 가격 산정을 허용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격 산정에 허점이 있으면 투자자가 큰 피해를 볼 수 있어서다.

가격 평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술품 조각투자 시장은 활성화할 수 없다고 미술계는 입을 모은다. 반대로 조각투자를 위한 미술품 감정 ‘수요’가 생긴 만큼 곧 ‘공급’이 뒤따르면서 가격 평가 문제가 풀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몇몇 전문가가 미술품 감정평가 법인 설립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수영/선한결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