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장르의 뮤지컬로 관객 맞이
◆ 압도되는 스케일, 웅장함을 느끼고 싶다면 '레베카'·'벤허'
불의의 사고로 아내 레베카를 잃은 영국 귀족 막심 드 윈터가 우연히 '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나'는 맨덜리 저택의 안주인 자리에 앉지만 죽은 레베카의 흔적으로 가득한 그곳에서의 생활은 썩 쉽지 않다. 레베카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을 보이는 집사 댄버스, 레베카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 등을 두고 미스터리하면서도 스산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댄버스 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광기 어린 모습과 폭발적인 성량이 매 시즌 화제가 됐다. 보랏빛 커튼이 휘날리는 기묘한 분위기 속 댄버스가 회전하는 발코니 무대에서 레베카를 외치며 울부짖는 2막 첫 장면은 놓쳐서는 안 될 핵심 장면이다.
깊이감 있는 연출, 고퀄리티 넘버가 눈과 귀를 동시에 사로잡는다. '프랑켄슈타인'을 성공적으로 탄생시킨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음악감독이 의기투합해 2017년 초연했으며 올해가 세 번째 시즌이다. 왕 연출과 이 음악감독이 기획했던 '신(神) 3부작'에 해당하는 작품이 바로 '프랑켄슈타인'과 '벤허'다. '프랑켄슈타인'으로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벤허'는 신을 만난 인간의 이야기다.
놓쳐선 안 될 장면들이 넘쳐나는 '벤허'다. 실제 크기의 말 여덟 마리로 구현해낸 전체 경주 장면은 스케일 자체만으로 놀라움을 안긴다. 말의 움직임이 세밀하게 표현된 가운데, 두 대의 전차가 회전 무대에서 돌아가 박진감을 더한다. 자유와 안식을 대변하는 공간인 카타콤(지하 묘지) 역시 사실적으로 묘사돼 절로 숨죽이고 보게 된다. 진한 감성의 넘버는 심금을 울린다.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벤허' 또한 '넘버 맛집'으로 불릴 만 하다.
◆ 향수에 젖고, 흥에 취하고…'멤피스'·'시스터즈'
인종의 경계를 허문다는 큰 주제 아래 음악과 춤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멤피스'다. 솔, 알앤비, 가스펠에 이어 로큰롤까지 화려한 연출과 무대가 이어진다. 흑인 디바 펠리샤를 소화하는 정선아의 가창력에 혼이 쏙 빠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흑인을 표현하면서도 블랙 페이스(검은 피부 분장)를 하지 않은 연출은 편견과 차별을 영리하게 한 꺼풀 벗겨낸다. 성장과 화합의 과정은 인종의 경계 없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통해 유쾌하게 그려진다.
미8군 무대를 중심으로 공연하고, 동남아 순회를 도는 등 무대를 해외로 넓혀나간 원조 걸그룹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난영, 김숙자, 윤복희, 김명자, 고재숙, 김인순 등 각 에피소드별로 묘사된 인물들의 놀라운 싱크로율도 관전 포인트다. 무대는 물론 공연 중간중간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공개되는데 관객들은 저마다 반가움을 드러낸다. 젊은 층은 공감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여전히 뮤지컬 무대에 오르고 있는 윤복희, 지난 5월 앨범을 발매한 고재숙, 젊은 세대들에게도 친숙한 인순이 등은 이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과거에 그치는 게 아닌 현재진행형임을 상기시킨다.
◆ 코끝이 찡…묵직한 여운 원한다면 '곤 투모로우'·'프리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이들의 헌신과 갈 수 없는 땅을 향한 처절한 마음 등이 극에 무겁게 깔려 있다.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웰메이드로 잘 알려진 작품으로 시대극임에도 모던하고 독특한 미장센과 실험적인 연출이 인상적이다. 느와르 액션과 안무가 몰입감을 높이고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해내는 음악과 조명 또한 매력적이다. 플래시백, 슬로우 모션 등의 효과는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주기도 한다.
프리다 칼로 역을 소화하는 배우의 감정 소모가 상당하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 또한 감정 소모가 크다. 연출력에는 박수가 쏟아진다. 토크쇼를 배경으로 한 액자식 구성, 위기의 순간을 표현한 사이렌 소리, 프리다가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일과 만났던 인물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레플레하·데스티노·메모리아) 부여까지 예술과도 같았던 프리다 칼로의 삶을 탁월한 감각으로 뮤지컬화했다. 추정화 연출의 센스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진하고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