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깡통 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전세사기 특별법 100일을 맞아 열린 제대로 된 특별법 개정과 피해지원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전세사기 깡통 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전세사기 특별법 100일을 맞아 열린 제대로 된 특별법 개정과 피해지원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수십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돼온 전세 시장이 2020년 7월을 기점으로 크게 흔들렸다.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등 새로운 임대차법이 도입된 시점이다. 치솟았던 집값이 지난해부터 급락했고, 금리가 오르면서 전세 시장은 또 한 번 혼란을 겪었다. 혼란스러운 전세시장, 임대차법이 도입된 이후 전세 시장의 변화와 앞으로 바뀌어야 할 모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대표적 서민 주택인 빌라(연립·다세대), 단독·다가구 등 비아파트 전세 시장이 여전히 불안하다. '전세 사기'에 대한 여파가 시장을 흔들고 있어서다. 아파트와는 달리 정확한 시세 파악이 어렵다는 점, 시장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 등도 비아파트 전세 시장이 안정되지 않는 이유다.

정부가 내놓은 '전세 사기 특별법'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을 키운다. 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이 계속되자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갈등도 반복되고 있다.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집주인을 믿지 못하고, 집주인은 세입자의 선 넘은 요구에 황당한 상황이다.

여전히 '전세 사기' 공포에 휩싸인 빌라 임대차 시장

2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빌라 왕'·'빌라의 신'·'건축왕' 등 전세 사기 피의자들이 시장을 휩쓸고 간 이후 비슷한 사건들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세입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비아파트 전세 시장을 흔들고 있는 핵심 요인은 '전세 사기'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국회 정무위원회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사고 건수는 2022년 51건에서 올해 8월 말 기준 260건으로, 사고금액은 111억원에서 559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들어 전세 사기 문제가 심각했던 서울, 경기, 인천, 부산 지역 사고 규모는 각각 86건 215억원, 79건 183억원, 24건 39억원, 31건 56억원이었다. 금액만 놓고 보면 전체 사고의 88.2%에 달했다.

빌라 등 비아파트만의 특성도 전세 시장 안정을 해치는 요인이다. 대표적인 특징은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집주인이 집을 매도하려고 해도 매수할 수요가 적다. 세입자 입장에선 최악의 경우 집이 팔릴 때까지 전세 보증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확한 시세 파악도 어렵다. 거래가 자주 일어나는 것도 아니거니와 위치, 면적 등이 서로 달라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 이 밖에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주변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점 등은 빌라 등은 비아파트의 단점으로 꼽힌다.
서울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사진=연합뉴스
반면 아파트는 매수하려는 수요가 꾸준하다. 환금성이 높단 얘기다. 동, 층수, 면적대, 단지 수 등 일정한 기준이 있고 거래가 잦아 시세를 파악하는 게 어렵지 않다. 단지마다 입주자대표회의 등이 있어 등이 있어 자체적으로 관리가 이뤄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곳 주변으로는 기본적인 인프라도 들어선다.

이런 불안함은 가격에 드러난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국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8월 기준 전국 연립주택 전세가격지수 변동률은 0.05% 하락했다. 서울은 0.03% 내렸고 수도권과 지방은 각각 0.04%, 0.08% 떨어졌다. 단독주택도 마찬가지다. 전국 단독주택 전세가격지수 변동률은 0.01% 내렸다. 수도권은 보합을, 지방은 0.02% 하락했다.

올해 누적 기준으로 살펴보면 전국 연립주택 전세가격지수는 2.47% 내렸고 단독주택의 경우 0.47% 하락했다. 수도권 연립주택 전셋값은 2.91%, 지방 연립주택 전셋값은 1.33% 떨어졌다. 수도권 단독주택은 0.79%, 지방 단독주택은 0.37% 하락했다.

아파트 전셋값은 이달 셋째 주(18일) 전국 기준으로 0.13% 올라 전주(0.11%)보다 상승 폭을 키웠다. 지난 7월 셋째 주(17일) 약 1년 2개월 만에 보합으로 돌아선 이후 같은 달 넷째 주(24일)부터 9주째 올랐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빌라 등 전세 시장이 여전히 불안한 이유는 결국엔 '전세 사기' 여파가 남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아파트와 비교했을 때 환금성, 거래 빈도, 가격 투명성 등 여러 방면에서 비아파트의 단점이 부각된다. 세입자들이 봤을 땐 '불안한 주택'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요가 없으니 가격 회복이 더딘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부연했다.

"전세사기 특별법 제대로 작동 안 해"…집주인·세입자 갈등 지속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만들려고 내놓은 '전세 사기 특별법'마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특별법은 사기에 연루된 집이 경매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피해자가 원한다면 해당 집을 살 수 있는 우선매수권을 부여한다. 또 피해자가 집을 매수하지 못하는 경우엔 정부가 해당 주택을 사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한다.

올해 6월 전세 기간이 만료됐음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피해자 정모씨는 "전세 사기 피해자로 신청했지만, 요건에 충족하지 못해 거절됐다"면서 "정부가 전세 사기 특별법을 내놨지만 사실상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다"고 하소연했다.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세 사기 고충 접수센터장은 "특별법은 피해자의 '주거안정지원법'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라며 "현재 시장에서 법이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법 자체가 당장 피해자를 도울 수 없는데 비아파트 매매 시장이든 임대차 시장이든 살아날 수 있겠느냐.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아파트를 둘러싼 문제들이 법을 통해 해결될 수 있어야 비로소 비아파트 전세 시장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전경. 사진=한경DB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전경. 사진=한경DB
비아파트 전세 시장이 불안한 상황을 이어가면서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서울 관악구에서 집을 구하고 있다는 직장인 이모씨(35)는 "요즘엔 매스컴 등에서 전세 사기와 관련한 이슈가 덜 나오긴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게 사실"이라면서 " 일면식도 없는 집주인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집을 구할 때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물어본다"고 말했다.

강서구에서 빌라를 보유한 60대 최모씨는 "한참 전세 사기가 이슈가 됐을 때는 아예 세를 놓고 싶지도 않았다"며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데 기분이 좋지 않더라. 세입자가 직업이나 소득 등 개인적인 부분까지 물어보는데 '좀 아니지 않나' 싶더라"라고 토로했다.

한편 비아파트 전셋값 하락은 시장이 정상화하는 과정이라는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2020~2021년 집값 급등기 아파트값을 따라 비아파트 가격 역시 치솟았는데 매매가격이 오르자 전셋값도 덩달아 올랐다"며 "정상적인 시장에선 오를 수 없는 가격까지 치솟은 게 사실"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현재 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비아파트가 보유한 전세 사기 위험, 아파트 대비 불투명한 가격 등 단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실수요자들이 납득할만한 가격까지 내리면 자연스럽게 비아파트 전세시장도 안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끝)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