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분석…"북한, 북미정상회담 후 무기개발에 집중"
"미국, 북한은 '3급 안보 우려'…중국 문제 우선시"
"미국, 대북 협상카드 없어…김정은, '트럼프 복귀' 주시할듯"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밀착하는 상황에서 미국에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만한 별다른 카드가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무기 개발에 집중해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내년 재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을 것으로도 관측됐다.

영국 BBC 방송은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러 관계가 가까워지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미국에는 이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14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일단 미국에는 북한을 압박할 경제적 수단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미 국무부 출입기자가 "평양에 제재 대상이 아닌 구멍가게가 한두 개나 있을까"라고 농담했을 정도라고 BBC는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방한했을 때 김 위원장에 전할 말이 있는지 물었을 때 "헬로(Hello). 끝(Period)"이라고 말한 것도 이같은 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프랭크 엄 미국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국무부가 시사하는 것처럼 정말로 대화에 열려 있었다면 이를 보여주기엔 웃긴 방법이었다"며 또 한 번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말했다.

엄 선임연구원은 "지난 70년에 걸쳐 양측이 놓친 기회와 실수들이 쌓여 오늘날 우리가 겪는 난처한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 대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핵 무기고 구축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협상 가치가 있는 위협'이라는 점을 보여주려 노력해 왔다고 BBC는 분석했다.

엄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박에 맞서는 데 얼마나 탄력적이고도 단호했는지 과소평가했다"며 "여러 행정부에 걸쳐 많은 사람이 아마도 북한 문제를 3급 안보 우려로 규정하고 필요한 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는 북한이 작은 나라여서 또는 붕괴 직전처럼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북 협상카드 없어…김정은, '트럼프 복귀' 주시할듯"
이같은 상황은 김 위원장이 바라는 만큼 미국에 '우선순위'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세 차례에 걸쳐 떠들썩하게 만났으나 협상에 성과를 내지 못한 뒤 북한은 무기고 확충에 더 열을 올리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AP 통신 초대 평양지국장이었던 진 리는 "하노이 회담이 처참하게 실패한 이후 김정은은 더 크고 위협적인 무기고를 갖추고 더 강한 위치에 서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힌 것 같다"고 풀이했다.

리 전 지국장은 "그는 자신의 무기고가 2018, 2019년 미국을 협상 타결로 몰아갈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데 놀랐다"며 "코로나19로 고립된 3년을 자신에게 더 유리한 입지와 지렛대를 줄 것 같은 무기고 조정·구축에 보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강한 친분이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할 수도 있는 다음 미국 대선이 어떻게 될지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렇게 무기고를 채우고 있는 동안 중국이 미국에 더 큰 골칫거리로 떠올랐고, 이 역시 북한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BBC는 짚었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의 고위급 대화 재개나 아시아 지역 내 동맹 강화, 영향력 확대에 외교적으로 매진하다 보니, 북한에 대해서는 외교적 채널이 전무해 보일 정도로 너무 오랫동안 북한을 무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크라이시스그룹의 크리스토퍼 그린 분석가는 이제까지 중국 리스크가 북한 리스크를 앞섰다며 "미국은 억지 및 억제 전략이 최선이라고 결정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이 지난 수십년간 그랬던 것보다 더 러시아와 중국에 의존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며 "미국은 북한이 반응할 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나"라고 반문했다.
"미국, 대북 협상카드 없어…김정은, '트럼프 복귀' 주시할듯"
물론, 중국도 러시아와 북한 양쪽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대북 정책을 계산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북러 밀착과 이에 따른 긴장은 역내 안정성 측면에서 원치 않는 일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지역 내 영향력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린 분석가는 "북한·중국·러시아 관계를 둘러싼 많은 보도가 신냉전 서사로 흘러가겠지만, 이는 지나친 단순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은 필요한 것을 얻고자 중국과 러시아가 서로 경쟁하게 하고 관계를 다변화하고 싶을 것"이라며 "지금 미국이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