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평등'에도 거부감…2014년에야 '여성발전'→'양성평등'
한때 '남녀평등' vs '양성평등' 논쟁도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오랜 논쟁 속 돌아온 평등주간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양성평등 사회'.
올해 양성평등주간(9월 1일∼7일)의 공식 슬로건이다.

시민단체 측에서는 '양성평등'이 남성과 여성 두 성별의 존재만을 가정해 성소수자를 배제한다는 이유로 꾸준히 이 용어를 '성평등'으로 바꿀 것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성평등 정책을 주관하는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의 법명 핵심어가 '양성평등'이기 때문에 법률상 정해진 용어를 사용하는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쓰인 것일까?
31일 한국여성학 제35권에 인용된 국회 회의록 등을 보면 지난 30여년간 성평등 정책의 발전과 함께 용어를 둘러싼 오랜 논란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양성평등기본법의 전신인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던 1995년에는 '평등'이라는 단어에도 거부감을 보이는 시각이 있었다.

당시 국회에서는 법명의 핵심어를 '여성발전'으로 할 것인지 '남녀평등'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사실 정부는 '남녀평등기본법'이나 '남녀평등촉진법'을 법명으로 법안을 준비해왔으나 발의 직전에 '여성발전기본법'으로 변경했다.

1995년 제177회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김장숙 당시 정무(제2) 장관은 "저희는 '남녀평등기본촉진법' 이렇게 해서 '평등' 소리를 넣었었다.

그런데 '평등' 소리가 들어가니까 좀 거부반응이 많다, 이래가지고 이번에 '발전기본법' 이렇게 됐다"고 진술했다.

박희태 법제사법위원장은 "이것('여성발전' 용어)이 아마 남녀평등보다는 작은 사람을 키우고 다 큰 사람은 마음을 키워주고 지위를 키워주는 이야기겠지요"라고 말해 '여성 발전'이라는 용어에 시혜적 관점이 반영돼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용어는 남녀 위계를 유지한 채 여성의 지위향상을 수용하는 당시 정책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반대로 '여성'이라는 용어에 대한 거부감이 문제가 돼서 여성부(현재 여성가족부)를 설립할 당시 '양성평등부'나 '남녀평등부'를 고려하라는 제안이 나왔다.

여성부 설립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여성부의 명칭이 남성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2003년 여성발전기본법 개정안 심의에서는 법률상 '남녀평등'이라는 용어를 '양성평등'으로 대체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남녀평등'이라는 용어가 특정 성(남성)에 대한 우월의식이나 차별을 전제로 한 소극적 개념을 나타내는 반면, '양성평등'은 차별을 중립화시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오랜 논쟁 속 돌아온 평등주간
이후 2000년대에는 정책 용어에서 '양성평등'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일례로 2003년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설립됐으며, 교육공무원법상 '남녀평등을 위한 임용계획의 수립'이 '양성평등을 위한 임용계획의 수립'으로 변경됐다.

'성평등'과 '양성평등' 용어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건 2014년 여성발전기본법 개정안 논의에서다.

양성평등기본법을 지지하는 측은 성평등기본법을 법명으로 하면 성적 지향에 대한 문제를 포함하게 된다는 이유로 양성평등으로 명칭을 정할 것을 주장했다.

당시 진술인으로 나선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연구원은 "동성애와 성적 지향에 대한 부분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논의하기에 약간 무르익지 않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결국 법명은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돼 지금까지 유지 중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성평등의 목적은 다양한 성을 가진 사람들이 평등한 삶을 누리는 것이지, 남성을 기준으로 놓고 여성이 쫓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런 큰 목표를 설정하려면 '양성평등'보다 '성평등' 용어를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오랜 논쟁 속 돌아온 평등주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