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금함 부수고 60여만원 챙겨…"경험많은 산악인 소행인듯" 스위스 산악계 분노
알프스 위험 등반로 2천400m지점 올라 기부금 훔쳐간 도둑들
스위스에서 가장 위험한 등반로에 설치돼 있던 기부금 모금함이 털렸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문 등산 장비를 갖춘 도둑들은 암벽에 부착된 강철 사다리와 케이블을 이용해 다우벤호른 봉우리(약 2천900m) 아래 해발 8천 피트(약 2천 400m) 높이에 있는 모금함에서 400∼500 스위스 프랑(약 400파운드, 약 66만 7천 원)을 가져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로이커바트 등반클럽'이 바위투성이의 등반로 유지관리비를 모으기 위해 가져다 놓은 이 모금함은 앞 문이 심하게 찌그러진 채 열려 있었다.

모금함 위에는 "당신의 기부금이 우리 모두를 위해 쓰인다"는 클럽 팻말이 붙어 있었다.

도둑들이 지나온 루트는 스위스에서 가장 길며 알프스에서 가장 험난한 등반로를 뜻하는 레벨 K5 '비아 페라타'(via ferrata)로 지정된 곳이다.

비아 페라타는 가파른 암벽에 케이블, 철계단 등 인공 구조물을 설치한 등반 루트를 말한다.

로이커바트 등반클럽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인 패트릭 그리칭은 도둑들이 이 지역을 잘 아는 경험 많은 산악인이라며 "무자비하게" 모금함을 부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평범한 등산객이 아니다"라며 "모금함은 드라이버 정도로는 열 수 없는 육중한 크기"라고 덧붙였다.

도둑들에게 털린 모금함은 등반가들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3천피트(약 910m) 등반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초원 앞에 있다.

성수기에는 매일 약 50명이 이곳까지 올라온다.

그리칭 이사는 도둑들이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올라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은 2015년에 케이블과 철사다리가 설치된 후에도 매우 숙련된 등반가들만이 오르던 곳이어서 이번 도난은 등반가들에게 충격을 줬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로이커바트 클럽 측은 X(옛 페이스북)에 "대체 이들이 누구일까요?"라고 물으면서 이번 절도 행각이 등반가들을 존중하지 않는 "심대한 모욕"이라고 규정했다.

클럽 측은 또 "우리는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비아 페라타를 돌보고 있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며 "등반로를 유지하고 보수하는데 필요한 돈을 기부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기부한 돈을 훔쳐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우리는 도둑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으며 앞으로 영원히 산을 오를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클럽 측은 도둑들이 거의 1만 피트에 달하는 다우벤호른 봉우리 정상까지 계속 등반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칭 이사는 "나 같으면 남의 돈을 내 배낭에 넣고 산에 오를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역 사업가이면서 등반가인 패트릭 해넌 씨는 클럽 측을 향해 "이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당신들이 하는 일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으니 너무 낙심하지 말라"며 "손실을 벌충할 수 있는 돈을 기부하게 되어 기쁘다"고 X에 밝혔다.

그는 500 스위스 프랑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헝가리 등반가연합회의 한 회원은 연합회가 현금의 취약성으로 인해 QR 코드를 포함하도록 기부금 모금 방법을 바꿨다고 말했다.

세계평화지수(GPI)에 따르면 스위스의 범죄율은 일본 다음 순위인 11위로 세계에서 낮은 편에 속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현금 인출기를 겨냥한 강도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통하는 스위스는 유럽에서 현금 인출기가 가장 많은 나라다.

현금 결제 비율이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높은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