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보도…"미국 지원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 카드"
속 타는 미국?…"사우디, 중국 원전 건설 제안 저울질"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입찰 제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 보도했다.

WSJ은 이 사안을 잘 아는 사우디 당국자들을 인용해 중국 국영 원전기업인 중국핵공업그룹(CNNC)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국경 인근 사우디 동부 지역 원전 건설에 입찰했다고 전했다.

사우디가 중국의 원전 건설 제안을 검토하고 나선 것은 미국 압박용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포함한 협상에서 민간 분야 원자력 개발을 지원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해왔다.

미국은 원자력 개발 지원에 대해 사우디가 자체적으로 우라늄을 농축하지 않고 자국 내에서 우라늄을 채굴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데 달려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가 중국의 원전 건설 제안을 저울질하는 것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원자력 지원 조건에 타협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WSJ은 사우디 당국자들도 비확산 요구 조건과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의 타협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WSJ은 "중국의 제안으로 사우디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를 얻었다"고 짚었다.

사우디 당국자들은 원자로는 한국전력이 건설하고 미국의 운영 전문 지식을 도입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미국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확산 통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의 입찰가는 한국전력과 프랑스 전력공사(EDF)의 제안보다 최소 20% 이상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 당국자들은 또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미국과의 협상이 결국 실패로 끝나면 중국 기업과 논의를 진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의 중동 에너지 전문가인 저스틴 다긴은 중국이 같은 종류의 비확산 요구 사항을 내걸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우디에 더 유리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는 중국이 국제 비확산 규정을 준수하면서 민간 원자력 분야에서 사우디와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CNNC는 WSJ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속 타는 미국?…"사우디, 중국 원전 건설 제안 저울질"
사우디가 중국의 입찰 제안을 진행할 경우 미국 진영에 굳건하게 서 있던 사우디가 중국으로 기우는 또 하나의 지정학적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WSJ은 전망했다.

다른 국가에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은 해당 국가를 값비싼 장기 계약에 묶어둔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쑨친(孫勤) 전 CNNC 회장은 초기 논의부터 계약 체결, 원자로 건설, 유지, 원자로 폐쇄까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할 때 원자로 건설 계약을 '100년 결혼 생활'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최근 중국이 주도하는 신흥 경제국 협의체 브릭스(BRICS)에 합류하기로 하는 등 중국에 바짝 밀착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사우디의 최대 석유 수입국이자 최대 무역 파트너이다.

WSJ에 따르면 중국도 사우디의 자체 탄도미사일 개발과 우라늄 정광 추출시설 건설 등을 돕는 등 사우디에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중동의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한 것도 중국이었다.

에너지 정보 업체 '에너지 인텔리전스'의 필립 채피는 사우디가 한전과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간 문제 해결의 속도를 높이거나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미국 정부 의사 결정권자들의 발밑에 불을 지르길 원할 경우 중국의 제안이 승산 없다고 해도 CNNC를 하나의 옵션으로 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웨스팅하우스는 지난해 10월 한국의 APR1400 원전이 웨스팅하우스가 인수한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이 1997년 당시 한국전력과 라이선스 협정을 체결해 사용을 허가한 기술을 활용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웨스팅하우스와 한전은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고 WSJ은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