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이 지난 6월 2600억원 규모의 삼중수소제거설비를 수주한 루마니아 동부 체르나보다 원전 모습. /한수원 제공
한수원이 지난 6월 2600억원 규모의 삼중수소제거설비를 수주한 루마니아 동부 체르나보다 원전 모습. /한수원 제공
“한국의 우수한 건설역량과 사업관리 능력을 유럽에서 입증받은 쾌거입니다.”(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6월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 건설사업 수주에 성공하는 등 해외 원전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루마니아 원자력공사(SNN)가 발주하고 한수원이 단독 입찰해 수주한 사업으로, 원전 단일설비 수출로는 역대 최대인 2600억원 규모다.

삼중수소제거설비는 원전의 감속재와 냉각재로 사용되는 중수에서 촉매 반응으로 삼중수소를 분리해 안전한 형태로 전용 설비에 저장하는 장치다. 삼중수소제거설비를 통해 방사성 폐기물의 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번에 한수원이 수주한 삼중수소제거설비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동쪽으로 약 170㎞ 떨어진 도나우강 인근의 체르나보다 원전에 건설된다. 내년 9월 최초 콘크리트 타설에 들어갈 예정이며, 2027년 8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수주가 가능했던 비결 중 하나로 한수원은 발주사와의 깊은 신뢰를 꼽는다. 그동안 한수원은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에 방사성 폐기물 저장고 타당성평가 기술용역, 기동용 변압기, 전압안정기, 노내핵계측기 등 설계 용역 및 원전 기자재 공급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발주사와 신뢰를 쌓아왔다. 한수원은 삼중수소제거설비 건설에 필요한 기자재를 최대한 국내 업체를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또한 국내 원전 기자재 공급업체와 동반성장을 위해 유럽 원전의 제작 관련 인증, 기술 및 품질 요건을 공유해 유럽 시장 진출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이번 계약은 유럽지역 한수원 최초의 EPC(설계·조달·시공) 사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는 한수원의 원전건설 및 운영 기술이 해외에서 인정받은 사례로, 가동원전 설비개선 등 유럽 원전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형 원전뿐 아니라 한수원은 정부와 함께 소형모듈원전(SMR) 해외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SMR은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의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한 전기출력 300㎿e 이하 원자로를 말한다. 공장에서 주요 구조물을 모듈 형태로 대량 생산한 후 건설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전력망 활용이 가능한 점, 전기생산 외에도 수소생산이나 담수화, 주변 지역 난방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점 등에서 SMR은 세계적으로 수요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 중심으로 세계에서 80종 이상의 SMR 노형이 개발 중이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등이 폐쇄되기 시작하는 2030년대부터는 SMR 시장의 폭발적인 확장이 예상된다.

한국도 2025년 말 표준설계 완료, 2028년 표준설계 인허가 획득을 목표로 ‘i-SMR’(혁신형 소형모듈원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6월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으로 신청한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 예비타당성 조사가 통과됐다. 정부는 올해부터 6년간 3992억원을 투입해 한수원과 함께 i-SMR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170㎿e급 일체형 가압경수로형인 i-SMR은 중대사고 발생 확률이 10억 년에 한 번으로 사실상 ‘0’에 가깝다. 자연순환에 의한 냉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안전성을 대폭 높였다. 또 기존 원전에 비해 방사성 폐기물 발생량도 적다. 원전업계에서는 i-SMR이 2030년대 글로벌 ‘톱3’ SMR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