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산불에 따른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미국에서 100여 년 만에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낸 화재 참사가 됐다.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복구 비용은 55억달러 이상으로 예상된다. 하와이주 정부는 ‘인재’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

12일(현지시간)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이날 기준 산불 사망자가 최소 93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최악의 산불로 꼽히는 2018년 캘리포니아 패러다이스 마을 화재의 사망자 수인 85명을 넘기면서,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1918년 미네소타주의 칼턴 카운티 등 지역의 산불 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태평양재해센터와 미 연방재난관리청에 따르면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 지난 8일 시작된 이 산불 때문에 탄 면적(11일 기준)은 8.78㎢로 추산된다. 여의도 면적(2.9㎢)의 세 배 규모다. 하와이 당국은 웨스트 마우이 등에서 2200여 가구의 주택이 파손됐고, 이재민이 1만 명에 육박한다고 발표했다. 재산 피해는 60억달러(약 7조99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지역을 복구하려면 55억2000만달러(약 7조3500억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하와이주 정부와 하와이 전력회사 등의 부적절한 대응이 피해를 확대했다는 논란도 빚어지고 있다. 하와이는 적의 공습과 자연재해 등에 대비해 세계 최대 규모 경보 시스템을 갖췄으나, 산불 발생 후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력회사가 나뭇가지가 전선에 닿아 불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공공안전 전력 차단’을 시행하지 않았다는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도 나왔다. 하와이안일렉트릭은 “전력을 차단하면 화재 진압에 필요한 물을 끌어오는 데 필요한 전기도 사용하지 못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하와이 주 정부는 산불 전후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큰 불길이 잡히면서 미 연방정부와 하와이 당국은 수색대와 탐지견을 투입해 구조와 사체 수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화재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상에서는 불이 꺼졌을지 몰라도, 땅속에서 나무뿌리들이 불타고 있어 언제 다시 번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CNN 보도에 따르면 토양 온도는 섭씨 82~93도까지 올랐다.

날씨도 문제다. 하와이 산불이 해변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은 강수량 부족으로 건조한 상황에서 불이 붙자마자 허리케인 도라가 덮쳤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 시속 80마일(129㎞)의 돌풍이 불었다.

마우이섬 1만 가구가 정전돼 긴급 복구에 나섰으나 아직 절반가량의 전기가 끊긴 상태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