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자들의 복수기 그린 영화 '지옥만세' 임오정 감독
"집단논리가 배제하는 약자들…K-지옥 보여주고 싶었죠"
나미(오우리 분)와 선우(방효린)는 천국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여고생들이다.

학교폭력(학폭)으로 상처 입은 이들은 자살을 통해 'K-지옥'을 벗어나기를 꿈꾼다.

그러나 정작 가해자인 채린(정이주)이 해외 유학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이 계획은 바뀐다.

채린을 찾아가 그의 정체를 폭로하고 발목을 잡기로 한 것이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지옥만세'는 학폭 가해자에게 복수하려는 두 여고생의 로드 무비다.

처음엔 흔한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어렵게 찾아낸 채린이 사이비 종교에 빠진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스토리는 반전된다.

마치 21세기 한국판 '톰 소여의 모험'을 보는 듯하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임오정 감독은 학교폭력과 사이비 종교를 한 영화에서 다룬 이유를 묻자 "집단의 논리로 약자를 소외시키는 학교의 시스템이 종교 집단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두 소재를 비교하고 풍자하려 했다"고 답했다.

"학폭은 한 사람의 추악한 인성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일군의 무리가 혹독하게 시스템화하면서 벌어지는 일이죠. 하지만 결국 학교의 경쟁 체계가 이런 아이들을 배출해내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이비) 종교집단 역시 경쟁 구도를 만들고, 실제 세상에는 없는 추상적 공간을 열망하게 하면서 싸움을 붙이죠. 학폭과 마찬가지로 희생양은 결국 어린아이들이고요.

"
학교를 그만두기 전 채린은 친구들과 똘똘 뭉쳐 나미와 선우를 괴롭힌다.

하지만 그 역시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간 교회에서 낙원이라 불리는 곳에 가기 위해 자유를 포기한 채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 약한 어린이들을 또다시 짓밟기도 한다.

"집단논리가 배제하는 약자들…K-지옥 보여주고 싶었죠"
임 감독은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행태를 "K-지옥"이라고 표현하면서 영화를 통해 이를 지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커다란 논리들이 들끓는 가운데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소수자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잖아요.

성소수자나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같은 약자들은 투명 인간이 되는 게 현실이죠. 선우나 나미, 채린처럼요.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
그 역시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 불렀다.

비혼에 뚜렷한 직장이 없고 비주류 문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지옥만세'는 무거운 메시지와는 달리 이른바 'B급'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미와 선우 캐릭터는 10대 특유의 괴팍함과 발랄함, 진지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웃음을 유발한다.

두 캐릭터의 성격에는 임 감독의 과거 모습이 일부 투영됐다.

나미에는 우울감에 빠진 자신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랐던 모습이, 선우에는 끝없이 우울 속으로 침잠했던 모습이 담겼다.

이 두 사람을 단짝으로 만들어주면서 둘 모두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고자 했다고 임 감독은 설명했다.

"나미와 선우가 각각으로 존재했다면 (극단적 선택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는 아이들이에요.

하지만 둘이 만나서 친구가 되면서 위기를 극복하게 됩니다.

잠깐이지만 함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고 그 힘으로 죽음을 하루 더 미루는 거죠. 그런 위로를 건네려 했어요.

이 영화가 실제로 존재할 나미와 선우 같은 관객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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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논리가 배제하는 약자들…K-지옥 보여주고 싶었죠"
임 감독의 첫 장편인 '지옥만세'는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다.

'극장전'(2005),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등 홍상수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연출부로 활동한 임 감독은 단편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2018)와 공동연출작 '한낮의 피크닉'(2019) 등을 통해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앞으로도 '지옥만세'처럼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추는 블랙코미디를 계속 내놓고 싶다고 했다.

"세상의 어두운 면모를 밝게 보여주고 싶어요.

가장 관심 있는 건 인간, 정확히는 인간의 내면입니다.

이들의 심리를 파헤치는 작품을 계속하려고요.

많이 다뤄진 소재라고 해서 낡은 소재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진행형인 사회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