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는 왜 출판계의 수장을 경찰에 고발했나
문화체육관광부가 출판계 최대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회장을 수사해달라고 경찰에 의뢰했다. 서울국제도서전 보조금과 관련해 탈선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출협 측은 박 장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체부와 출판계 간 갈등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수사 의뢰…왜?

3일 문체부는 "윤철호 출협 회장,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 등을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 2일 서울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고 발표했다. 형법상 사문서 등의 위조·변조, 업무방해 혐의도 제기했다.

문체부는 출협이 서울국제도서전 개최 보조사업에 대한 정산보고 과정에서 수익금을 누락해 회계 보고했다고 봤다. 박 장관은 "국민의 땀과 피, 눈물이 담긴 세금과 관련한 탈선과 낭비 의혹에 대한 추적, 진실 규명에는 예외가 없다"며 "수사를 통해 명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출협은 출판사들이 모인 민간 단체로, 매년 '국내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을 개최해왔다. 해외 출판인들에게 한국 책을 수출하는 저작권 마켓도 열리는 만큼 일부 비용은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다. 지난해 기준 행사 비용은 약 20억원, 국고보조금은 7억7000만원이었다. 출협은 보조금 사용 내역 등을 문체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보고해 승인받고, 문체부가 최종 승인한다.

문체부에 따르면 출협이 제출한 2018~2022년(코로나19로 축소개최된 2020년 제외) 도서전의 수익금 통장 사본의 거래 내역이 많은 부분 삭제, 블라인드 처리(하얗게 공란 처리)됐다. 문체부는 "수익금 수억 원이 누락된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출협의 입장은

이에 대해 윤 회장은 "이미 법적으로 공개 의무가 있는 부분은 충분히 공개했고, 보조금법에서 명시한 개인정보보호 의무를 지키기 위해 일부 부분만 가린 것"이라며 "단 1원 한푼이라도 부정하게 사용한 일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서울국제도서전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돼서 이어져온 행사인데, 논란에 휩싸여 안타깝다"며 "박 장관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 고소 등 필요한 법률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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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협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도대체, 왜, 뜬끔없이, 문체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근거 없는 주장을 통해 출판단체에게 이렇게 핍박을 가하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며 "문체부는 이익금을 숨겨서 윤철호 회장과 주일우 대표가 어떠한 사적 이익을 편취하였는지, 협회 통장 등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밝혀보기 바란다"고 했다.

출협 측은 "협회는 회계 시스템과 감사 시스템에 따라서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으로, 외감기업법 수준의 감사를 이미 독립적으로 받고 있다"며 "서울국제도서전 관련해서도 보조금법상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산검증보고서를 성실히 제출해왔는데, 개인정보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사문서 위변조 및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핵심 쟁점은

양측은 서울국제도서전의 수익금을 두고 상반된 설명을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수익금' 범위부터 다르게 본다.

문체부는 행사 수입 전부를 수익금으로 칭하고, 출협이 수입 전체 내역을 보고·정산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가 준 보조금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입장료와 출판사·기관들의 부스 참가분담금 등도 정산․보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자료를 토대로 초과 이익을 반납하도록 해야 하는데, 문체부나 출판진흥원이 판단 근거로 삼을 자료를 출협이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출협은 "입장료와 부스사용료는 자체 수입으로, 이것이 국고보조금 수익금이라는 문체부의 주장은 현행법상 근거가 없다"고 맞선다. "행사 수익금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데, 사업주체와의 협의나 논의 없이 그 범위를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 출협은 '지금껏 매년 문체부와 출판진흥원의 승인을 받아 정산을 마쳤고, 과거엔 초과 이익을 국고에 반납하라는 의무를 부과한 적도 없다'는 입장이다. 문체부가 문제삼은 기간은 2018~2022년이다. 문체부는 2019년부터 출협에 "보조금의 전부 또는 일부에 해당하는 금액을 반환조치할 수 있다"고, 지난해에는 "반환해야 한다"고 통지했다. 이에 출협은 지난해에는 2억원을 문체부에 반납했다.

출협, 오는 17일 대규모 집회 예고

문체부와 출협은 서울국제도서전 보조금을 둘러싸고 최근 약 1주간 서로를 공개 비판해왔다. 앞서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박 장관은 "서울국제도서전의 실태 점검을 위한 감사 결과 (회계 처리가) 놀라울 정도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고 한심한 탈선과 도덕적 타락의 행태가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출협과 문체부는 성명서와 반박 보도자료 등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비판했다. 같은 날 출협 측은 "박 장관이 문제 삼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그리고 그 이전에도 문화체육관광부의 담당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공개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해왔다"며 "출협은 십수년간 서울국제도서전과 관련해 문체부 담당관과 출판진흥원의 승인 없이 정산을 마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반박했다.

또 "한 나라의 출판문화를 책임지고 있는 장관이 자신의 명령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 표적 감사에서 의혹이 있다는 정도의 이유로 간신히 발전하고 있는 서울국제도서전을 망가뜨리려고 시도하는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우리 문화를 발전시킬 적임자가 아니기에 박보균 장관의 해임을 요구한다"고 했다.

이에 박 장관은 개인 블로그에 "통장의 '블라인드 처리'는 윤철호 출협 회장의 독단적 지시였는지를 추적하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직접 올리기도 했다.

출협은 이달 17일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당초 출판 불황에 따라 지원 대책을 촉구하기 위한 행사로 기획했으나 그 사이에 문체부와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문체부를 향한 항의 성격도 띌 것으로 보인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