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 기자
얼마 전 흥청망청 영상에 이런 고민 댓글이 달렸습니다.

"저는 무주택인 46세 솔로입니다. 청약통장은 10만원씩 25년을 부었고 딱히 아파트에 살 생각은 없는데 재산증식에 도움이 될까요?"
놀고 있는 내 돈 수억원? 청약통장 만들고 방치중이라면.. [흥청망청]
이분은 자신이 청약깡패인지 모르는 깡패입니다. 매달 10만원 x 12개월 x 25년이면 3000만원이죠. 이 정도면 거의 전국구 깡패입니다. 참고로 LH가 공공분양을 해왔던 이래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던 단지가 얼마 전 사전청약으로 나왔던 동작구 수방사 부지입니다. 역대 최고 커트라인도 3000만원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분이 여기 청약했으면 그냥 하이패스로 당첨될 수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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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은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분이 청약을 안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형님은 27년 납입하셨더라고요. 형님과 저는 둘 다 미혼인데 결혼을 해서 자식이 있어야 당첨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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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오해하시는데 결혼을 해야 아파트에 당첨되는 건 아닙니다. 제가 공공과 민간의 유형을 모두 OX로 정리해봤습니다. X는 우리 독자분도 가능한 유형이에요. 물론 다자녀 특공은 결혼을 안 해도 되지만 아이는 있어야 됩니다.

△는 조건부인데, 신혼특공 같은 경우 이름부터 결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공이라면 아직 결혼을 안 한 예비신혼이어도 되고 혹은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여도 지원 가능하단 의미예요.

생애최초의 △는 이런 뜻입니다. 공공은 결혼을 했거나, 혹은 아까 신혼처럼 한부모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1인가구는 불가능하단 얘기죠. 반대로 민간은 결혼을 안 한 1인가구여도 되는데 전용 60㎡ 이하인 주택형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일반공급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이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다 됩니다. 결혼과 관계없이 청약 가능한 유형이 생각보다 많죠?

이렇게 우리가 은행원이 만들라고 해서, 혹은 부모님이 등쌀에, 얼떨결에 청약통장을 만들어두기만 한 다음 청약제도를 공부하지 않아서 제대로 못 쓰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어릴 때 우리은행 예쁜 누나가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는데 그 누나가 월 2만원만 넣어도 된다고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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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공부했지만 공공에서는 청약통장에 누가 돈을 제일 많이 넣었느냐를 따집니다. 월 10만원까지 가능한데 누가 가장 오랫동안, 많이 넜었느냐예요. 똑같이 1년을 부었어도 아까 우리 독자분은 120만원, 저는 24만원. 게임이 안 됩니다. 깡패를 이길 순 없죠. 결국 저는 2만원만 넣어도 된다는 그 누나의 어설픈 지식에 당한 거죠.

그런데 이 형제분들이 민간분양엔 청약할 수 없습니다. 결혼 여부를 안 따진다고 했는데 왜 불가능할까요? 심지어 민간의 경우 생애최초에서도 1인가구 청약이 가능한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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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이분들이 갖고 계신 통장에 있습니다. 만든 지 25년, 27년됐다는 게 힌트입니다. 요즘은 청약통장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지만 사실 종류는 4가지나 됩니다. 예전엔 공공분양만 가능한 청약저축, 민간분양 모든 면적대에 가능한 청약예금, 민간분양 소형만 가능한 청약부금, 이렇게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종류 갖고 있는 것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청약저축을 만든 사람은 민간분양이 그림의 떡인 거죠.

그래서 이걸 다 합친 통장을 만든 게 주택청약종합저축입니다. 아마 여러분 대부분이 갖고 계신 통장이 이것이겠죠. 이름에 굳이 종합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어쨌든 종합저축이 탄생한 게 2009년이니까 얼마 안 됐습니다.

그럼 만든 지 25년, 27년 된 우리 독자 형제분들의 통장은 일단 종합저축이 아니라는 얘기죠. 10만원씩 부지런히 넣으신 걸 보면 청약저축일 확률이 99%. 그래서 민간은 안 되고 공공만 가능하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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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연을 보고 다른 독자분도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분은 청약저축을 만든 지 15년이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금 제가 청약저축은 공공만 되고 민간은 안 된다고 했죠. 몇 년 동안 이어진 아파트 로또청약은 모두 남 얘기였던 거죠. 이분이 짜증나서 은행에서 상담해보니까 예금으로 전환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청약종합저축이 없던 시절에 청약저축을 만들었던 분들은 민간에 못 넣고, 반대로 청약예금을 만들었던 분들은 공공에 못 넣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청약저축을 예금으로 바꾸는 건 됩니다. 반대는 안 돼요. 이 통장들은 종합저축으로 바꾸는 것도 안 됩니다. 해지하고 다시 만들어야죠. 요약하면 공공용 청약저축을 민간용 청약예금으로 바꾸는 것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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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은행원 설명대로 청약저축은 민간에 청약을 못 하니까 청약예금으로 바꾸는 게 오히려 나은 걸까요? 15년 동안 10만원씩 넣었다면 1800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인데 이 정도면 수도권 공공분양에서도 힘 좀 쓸 수 있습니다. 이걸 민간용 청약예금으로 바꾼다고요? 제가 지금 제 청약종합저축에다 일시불로 1800만원을 넣어버리면 우리 독자분의 지난 15년을 하루 만에 따라잡을 수 있어요. 물론 저는 돈이 없지만.
놀고 있는 내 돈 수억원? 청약통장 만들고 방치중이라면.. [흥청망청]
청약예금으로 돌리지 않고 저축으로 그대로 들고계신다면? 저는 앞으로 15년 동안 매달 10만원을 넣고, 독자분은 그 15년 동안 아무 것도 안 해야 우리의 격차가 없어지는 겁니다. 이분이 어쩌다 10만원이라도 넣는다? 그럼 또 한 달의 차이가 벌어지는 거예요.

공공분양은 이렇게 시간의 격차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남들이 지레 포기할 수밖에 없죠. 청약저축에 적어도 10년 이상 부었던 분들은 그 꾸준함이 최고의 무기이기 때문에 민간분양에 미련을 두시기보단 공공에서 나오는 청약을 계속 노리시는 게 현명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3기신도시 분양도 더 쏟아지니까요.
놀고 있는 내 돈 수억원? 청약통장 만들고 방치중이라면.. [흥청망청]
요즘 청약통장을 깨라는 전도사들도 계신데 절대 해지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본 것처럼 나의 비대칭전력이 되는 겁니다. 집이 있어도 청약통장을 또 쓸 수 있습니다. 급전이 필요할 때 1000만원, 2000만원 정도의 목돈을 빼서 쓴다고 인생이 급변하지도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차라리 청약통장 담보대출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편집 이예주 PD
촬영 이재형·조희재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