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명암 다룬 SF 단편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출간
종횡무진 글쓰기 비법 '꾸준함'…"스톱워치로 매일 작업시간 기록"
장강명 "난 사회파 소설가…한국 현실 다룬 소설 많이 나와야"
"저는 제가 사회파 작가라고 생각해요.

이번 SF 작업이 기존의 다른 작품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당대의 현실에 관한 문제의식이 제 글쓰기의 동력이지요.

"
장강명(48)의 신작 소설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문학동네)은 누구나 꿈꿨던 기술의 발명과 진보, 그로부터 시작된 예측불가능한 일상 등 근미래의 기술의 빛과 어둠을 그린 'STS SF'로 분류될 만한 단편 일곱 편이 수록됐다.

과학·기술·사회학(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을 뜻하는 STS는 과학기술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탐구하는 학문. 이 STS의 문제의식을 SF(Science Fiction)로 구현한 것이 바로 'STS SF'다.

장 작가는 지난 12일 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본사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새 소설집을 당대의 기술과 사회 현실을 탐구한 사회파 소설이라고 규정했다.

작가 본인 말대로 이 단편집은 표제작을 비롯해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데이터 시대의 사랑' 등 모든 작품이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간사회의 모습에 윤리적·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표제작은 눈앞의 풍경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가공해서 보여주는 증강현실(AR) 기술 '옵터'가 상용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증강현실 규제법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바다 위 크루즈선에서 생활하며 본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통솔하는 가상현실에 안주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자신이 보거나 듣고 싶어 하는 현실이나 의견만 취하려는 세태를 꼬집었다.

이 단편으로 장강명은 2021년 심훈문학대상을 받았다.

일본의 권위있는 SF문학상인 성운상 해외단편부문 후보에 올라 있는 대체역사소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도 타인에 대한 공감이 과연 새 시대의 윤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수작이다.

이 소설은 실존 인물이었던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등장시킨다.

유대인위원회는 체포한 아이히만을 체험 기계에 넣어 그가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겪고 반성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세계 각국 기자들을 불러 모은다.

작가는 유대인 사회와 과학계, 각국 기자들의 반응을 다각도로 묘사하면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 공감한다'는 윤리에 어떤 딜레마가 숨어 있는지를 살폈다.

장강명 "난 사회파 소설가…한국 현실 다룬 소설 많이 나와야"
"타인에 대한 공감이 새 윤리의 기초가 될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을 갖고 썼어요.

인간의 공감 능력이라는 게 때에 따라 매우 비논리적이거든요.

소수자나 여태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정체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진 않지만, 그 윤리적 근거가 충분치 않은 것 같습니다.

새 윤리를 만들기 위해선 '공감'으론 부족하고, 더 치열하게 지적 성실함을 갖고 논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
첨단기술의 발달과 그 윤리적 문제들을 탐구한 단편들은 그러나 다루는 주제의 무게감과 달리 대부분 경쾌하고 흥미롭게 읽힌다.

데이터과학의 발달로 인간관계의 지속성을 예측할 수 있게 된 미래에 사랑의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탐구한 산뜻한 단편 '데이터 시대의 사랑'은 판권이 최근 팔려 영화 제작도 추진되고 있다.

수록작들은 장강명 작품들의 큰 특징인 기발한 설정과 생생한 묘사, 평이한 문장 등으로 가독성이 높은데, 읽고 나면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제기하는 문제들에 관해 생각할 지점이 적지 않다.

"집필할 땐 SF에 대해 흔히들 말하는 장르적 쾌감 같은 것을 전면에 두지는 않았어요.

사회현실을 다룬 소설을 쓸 때도 그렇고 당연히 읽는 재미 역시 중요합니다.

기자로서 기사를 쓰던 때에도 읽는 재미를 염두에 두고 썼는데 소설은 말할 것도 없지요.

"
SF는 장 작가에게는 문학의 출발점과도 같은 장르다.

대학 시절 PC통신 동호회에 글을 쓰던 때부터 가장 좋아하고 즐겨 읽는 장르가 바로 SF였다.

이번 소설집을 통해 첨단 기술에 직면한 인간의 현실을 SF라는 형식으로 고찰했다면 곧 독자들을 만나게 될 작품들로는 사회 현실을 정면에서 다룰 계획이다.

조만간 발표할 단편 두 편은 코로나19 팬데믹에 직면한 저가항공사 조종사와 여행사 관계자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를 위해 실제로 민항기 파일럿 등을 수소문해 장시간 인터뷰했다고 한다.

장 작가는 이서수, 정진영 등 다른 동년배 소설가들과 함께 '월급사실주의'라는 동인을 지난해 결성하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하고 먹고사는 문제, 우리 시대의 노동 현장을 담은 소설이 더 나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다.

이 동인의 첫 작품집은 오는 9월쯤 문학동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당대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많이 나와야 해요.

저는 제가 사회파 소설가, 당대 현실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현재 한국엔 그런 작품이 별로 없어요.

평단도 그런 소설을 그리 주목하지 않고요.

비정규직 문제 하면 웹툰 '미생'과 '송곳'이 떠오르지, 소설 작품 뭐 떠오르시는 게 있나요? 지금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는데 그런 현실을 다룬 소설이 안 보이잖아요.

"
장강명 "난 사회파 소설가…한국 현실 다룬 소설 많이 나와야"
여러 신문에 칼럼도 자주 기고하는 그는 소설 쓰기 외에는 논픽션 작업에 특히 애정이 크다고 했다.

문학상 공모와 기업 공채 시스템을 분석한 르포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2018)이 대표적이다.

SF와 사회소설, 논픽션, 칼럼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글쓰기의 비법은 꾸준함이라고 했다.

"아침 6시 27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6시 30분에는 반드시 일어나요.

스톱워치로 작업 시간을 매일 기록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이제 루틴이 돼서 별로 어렵지 않아요.

"
기자 출신 작가답게 사회 문제를 다루는 소설을 구상하면서는 여러 관계자를 수소문해 사전 취재를 꼼꼼히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잘 만나주냐고 물은 기자에게 그는 "기자로 일할 때보다 소설가로서 취재할 때 많은 분이 더 속 깊은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것 같다"며 웃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