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장강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까닭
지난봄 방영한 TV 예능 프로그램 ‘내친나똑’(내 친구들은 나보다 똑똑하다)을 보다 깨달았다. 세상에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찮은 지식과 능력으로 자리를 탐할까.

이 프로그램은 퀴즈 예능이다. 연예인 한 명과 그 친구 셋이 한 팀을 이뤄 다양한 퀴즈를 푼다. 문제는 창의력, 수리력, 추리력을 발휘하는 양식이다. 친구들은 변호사, 일타강사, 의사, 유명 식당 최고경영자, 수능 수리 만점자 등 다양했다.

이 경합의 핵심은 협업이다. 나보다 똑똑한 친구의 머리를 빌려 우승에 도전한다는 콘셉트다. 맞다. 나보다 똑똑한 친구는 많다. 정의로운 사람도 많다. 착한 사람은 넘친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은 죽는 일뿐이다. 내 죽음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은 누군가 대신할 수 있다. 내친나똑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지 알려준다. 광복 이후 이승만은 나 말고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만 민족과 국민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국부’라는 소리를 듣고 미소 지을 수 있었겠는가. 박정희 대통령도 자기가 없으면 국가가 무너질 듯 행동했다. 유신은 잘 포장한 ‘나 아니면 안 돼’의 존재 증명서였다. 절정은 김영삼, 김대중의 1987년 단일화 실패다. 국민이 그렇게 원했건만 결국 따로 대선 후보로 나서서 권력을 놓쳤다. 군사 정부는 5년 더 갔다. 그들은 곡절과 번복을 거쳐 염원하던 대통령 자리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무엇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나. 그의 주변인 다섯이 시차를 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걸리는 게 많다. 그런데도 어물쩍 넘겼다. 버텼다. 사퇴론은 쑥 들어갔다. 이 대표의 행보에는 변화가 없다. 김남국 의원이 ‘당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며 떠밀리듯 탈당하고, 송영길 전 대표가 탈당한 뒤 검찰에 자진 출석 쇼를 벌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개딸’들의 덕질은 더 거세졌다. 민생을 얘기하지만 말뿐이고, 개혁은 시늉만 한다. 이쯤 되면 국민을 위한다는 그의 발언이 욕망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하긴 정치판에 국민을 위해 일하는 자가 있는지 의문이다. 모리배와 협잡꾼만 난장판에서 활개 치는 형국이니 말이다.

진보 정당은 윤리에서 보수 정당에 확연한 우위를 차지했다. 그 덕분에 소수일 때도 구차하지 않았다. 이젠 부끄러움조차 달나라 이야기다. 국민은 진보 정당에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당사자 처지에서야 억울할 것이다. 저쪽은 더 탐욕스럽고 뻔뻔한데 언론이 눈길도 안 준다고 푸념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다. 재판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당 대표의 모습은 비정상적이다. 상황이 이어지는데도 무기력한 민주당은 더욱 생경하다.

진정한 리더는 자신이 없을 때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보면 안다고 한다. 자기를 대신할 리더의 육성을 강조한 말이지만 돌려 읽으면 나 말고 많은 인재가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고 말하는 대표가 있다면 그는 착각하고 있거나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자기가 없는 비상 상황에 대처 방안을 마련해 두지 않았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서다.

내친나똑의 반전은 머리가 좀 부족한 친구가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를 풀어 우승할 때다. 지식이 아니라 지능이 아니라 통찰이 문제를 꿰뚫는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것은 앞물이 할 일을 다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