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오후 8시 느닷없이 편집국이 술렁였다. 세상에나, 노벨문학상이라니! 그것도 한강이라니! 황석영도 아니고 김혜순도 아니고 젊은 한강이었다. 여운은 오래 갔다.평화상에 이어 14일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 다론 아제모을루? 저서 목록을 보니 한국경제신문에서 그동안 대런 애스모글루로 써온 미국 MIT 교수였다. 완전히 다른 사람 아닌가. 국립국어원 외래어심의위원회는 어려운 문제를 던졌다.다시 엿새 뒤 하마스 수장 신와르가 사망했다. 통신사를 타고 들어온 이름이 혼란을 줬다. 야히야 신와르. 한경 표기는 야히아 신와르. 뭐가 맞는 것일까. 신문들은 이 팔레스타인 사람 이름(Yahya Sinwar)을 야히아, 야히야, 야흐야 등으로 적었다. 늑장 사정이 혼란 부채질외래어 표기가 혼란의 도가니다. 특히 외국 사람 이름이 그렇다. 혼란의 원인은 ‘인명, 지명은 현지 발음으로 적는다’는 외래어표기법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라 표기 일람표에 없는 핀란드어, 아랍어, 스와힐리어까지 정확히 적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러나 한글로 지구촌 모든 언어를 온전히 옮겨 적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 정음 창제 당시 자모 여린히읗(ㆆ), 반치음(ㅿ), 아래아(ㆍ), 옛이응(ㆁ)이 사라져 더더욱 쉽지 않다. 야히아, 야히야, 야흐야가 괜한 결과가 아니다.‘현지 발음’이라는 족쇄는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인명은 챙겨야 할 사항이 많다. 국적이 어딘지, 이민자인지, 그리고 자기 이름을 어찌 쓰는지 등. 아제모을루는 튀르키예 국적을 고려했다고 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베저스로 썼으나 본인이 베이조스로 불러달
“그곳은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었다. 나는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모든 희망을 버리고 무거운 돌문을 삐걱 열고 들이민 한 발, 단테의 ‘지옥’이다.지옥이 <신곡>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아 온 나라가 걱정인데 주어진 생명을 스스로 멸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 평균 37명 넘는 사람이 세상을 등진다. 민원에 시달리던 공무원, 학부모의 압박에 무릎 꿇은 교사, 모멸을 못 견뎠다는 배우…. 이들에겐 지금 이곳이 지옥이었다. 이들의 죽음을 전한 신문과 방송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했다. 용어가 자살 방아쇠는 아냐지난해 한국의 자살자는 1만3770명. 교통사고 사망자(2551명)의 다섯 배를 넘었다. 2021년 1만2252명, 2022년 1만3352명 등으로 지속 증가했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9년간 자살률 1위다.언어 규범은 보통 사회가 질주하는 보폭보다 느리게 변한다. 뒤따라간다. ‘자살’이란 말을 신문 뉴스에서 금기시한 것은 2004년이다. 10여 년 뒤 ‘극단적 선택’이 대안으로 등장했다. 본래 자살이란 단어는 한국어에 없었다. ‘자진(自盡)’ ‘자결(自決)’을 많이 썼다. 자살은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선생이 영어 ‘suicide’를 번역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진, 자결에 새로운 자살이 그리고 극단적 선택이 더해졌다.극단적 선택은 저널리즘 언어다. 완곡어법으로 사람들이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독자와 시청자의 순응성이 또 다른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게 차단한다. 하지만 ‘자살’을 ‘극단적 선택’으로 바꾸었다고 자살자가 줄었다는 기사와
분양의 계절이다. 지난달 인천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에 사흘 동안 2만 명이 몰렸다. 짧으면 2년 길면 20년 이상 통장을 채운 이들이 나들이 삼아 나섰다. 아파트 공화국에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서다.‘도곡동래미안레벤투스’ ‘여주역자이헤리티지’ ‘라디우스파크푸르지오’…. 분양에 들어갔거나 앞둔 단지들이다. 그런데 헤리티지는 알겠는데 레벤투스는 뭐고, 라디우스는 뭘까? 찾아봤다. 레벤투스(reventus)는 라틴어로 ‘귀환’이란 의미로 부와 명예의 재탄생을 기원하며 지었다고 한다. 라디우스(radieuse)는 프랑스어로 ‘빛나는’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빛나는 공원’ 아파트라는 얘기다. 영어도 모자라 불어·라틴어까지아파트 이름이 가관이다. 영어도 모자라 프랑스어에 라틴어까지 동원한다. 게다가 길어지고 있다. 어디 누가 산다고 하면 한 번 들어선 쉽게 기억하지 못할 지경이다. 서울, 수도권 할 것 없다. 개포래미안블레스티지, 디에이치아너힐즈, 북수원이목지구디에트르더리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데 아주 고약하다.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욕망의 현신이다. 높아지는 층수만큼이나 닿기가 쉽지 않다. 펜트하우스에 이르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들만의 세상, 건설사들이 겨냥한 것은 이 지점이다. 집주인도 함께 투사했다. 그렇게 해서 ‘스카이캐슬’이 탄생했다. ‘다름’과 ‘계급’을 드러내기 위해 언어를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한때 한글 아파트 이름이 유세 떤 적도 있다. 래미안(來美安), 푸르지오, e편한세상. 2000년대 초반 건설사들이 내세운 ‘브랜드&rsq
올해 이주민(장·단기 체류 외국인)이 5%를 돌파할 전망이다. 지난해 9월 251만4000명을 기록해 전체 인구(5137만 명)의 4.89%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를 다인종·다문화 국가의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결혼 이주뿐만 아니라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입국하는 외국인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외국인 노동자만 올해 16만5000명이 새로 들어온다.사정이 이런데 우리는 이들과 함께 살 준비가 돼 있는가. 한국이 급속히 다민족 국가로 변하며 불거진 사건은 한둘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이 정착을 요청했으나 반대 움직임이 일었고, 중국 동포들의 건강보험 ‘먹튀’와 지방선거 투표권 행사가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반면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철수 작전 때 같이 온 난민 390명에겐 호의가 넘쳤다. 한국인이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에는 자신감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한국은 이미 다민족 국가두려움의 배경에는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훼손 걱정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애초 단일민족 관념부터 입력 오류다. 단군 조선은 북방 민족에 쫓겨 한반도로 이동해 토착민과 융합했고, 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기 시작한 고려 때조차 거란, 여진, 몽골과의 전쟁통에 원하지 않는 피가 섞이기도 했다. 단일민족은 환상일 뿐이다.다민족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갈 조건은 딱 하나다.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에서 강조한 예수의 말, “이방인과 토착민, 외국인과 동포를 구별하지 마라”다. 차별 금지의 원칙이다.포용적 태도는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수다. 멸시는 우월한 자가 약한 자를 내려보는 시선이다. 경제적 우위는 멸시의 가장 흔한 기준이다. 동남아 출신 노
한국 경제가 부진을 지속하는 가운데 소비도 양극화되고 있다. 저가 상품을 찾는 경향이 강해진 동시에 고가 브랜드 상품 수요가 분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대표이사 사장 한수희)이 ‘2024년도 제26차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K-BPI)’ 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올해 K-BPI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박빙산업이 전체의 39.7%(93개 산업)에 달했다. 둘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를 유지하면 브랜드 역시 롱런했다. 셋째, 가격을 넘어 가치로 승부하는 대한민국 상위 1% 브랜드의 선전이 두드러졌다.산업 내 1~2위 브랜드 간 브랜드 경쟁력 총점이 약 70점 이내(1000점 만점)로 좁혀진 ‘박빙산업’은 브랜드 및 기업과 관련한 부정적 이슈 발생 시 언제든지 순위가 뒤바뀔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소비재는 감기약 부문에서 ‘판피린’(634.6점, 2023년 대비 175.5점 상승), 내구재는 창호재 부문에서 ‘LX하우시스 Z:IN(지인)창호’(663.6점, 181.3점 상승), 서비스재는 은퇴설계금융서비스 부문에서 ‘하나 연금닥터’(450.1점, 256.7점 상승) 등이 전년 대비 가장 큰 폭의 브랜드 경쟁력 상승을 보이며 새롭게 1위에 등극했다.동아제약의 ‘판피린’은 대외 이미지 광고와 더불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지속적인 마케팅이 주효했다. LX하우시스의 ‘Z:IN(지인)창호’는 기존 LG하우시스에서 LX하우시스로의 브랜드 전이가 성공적이었다. 하나은행의 연금 브랜드인 ‘하나 연금닥터’는 상품 출시 이후 고객들의 긍정적인 입소문에 힘입어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한편 올해 조사 결과에서는 ‘초격차’를 둔 넘버원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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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를 넘겼다. 고대하는 손님은 쉬이 오지 않는 것일까. ‘독박 육아’가 저출산 탈피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에 따라 서울시가 ‘동남아 이모님’을 모시기로 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 온다 온다 소리만 있고 아직이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애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대한민국은 인구절벽을 넘어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지난 16년간 2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지 않았다. 청년들은 결혼조차 거부했다. 동남아 이모님은 여성 홀로 육아를 책임지는 부담이 저출산의 주요 원인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처방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차별, 불법 체류자 발생 우려 등 도입 전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됐다. 언어의 풍경은 시대 변화 반영그 와중에 ‘이모님’이라는 호칭이 유탄을 맞았다. 이 호칭이 친족 아닌 사람에게 쓰인 것은 1990년대 초반쯤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식당 여주인에게 학생들이 친밀함을 표현한 것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았다. ‘아줌마’를 대체한 배려에서 나온 언어다. 아줌마가 부모와 같은 항렬 친족 여성에게 사용하던 ‘아자미’에서 온 말이라는 것을 알면 언어의 변신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이모~’가 대중에 안착한 데는 한국 사회의 모계화도 한몫했다. X세대(1965~1980년대 출생)가 결혼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젊은 부부에게 맞벌이가 보편화했고, 양육은 큰 문제였다. 젊은 엄마는 시부모에게 육아를 부탁하는 것보다 친정엄마에게 손을 벌리는 게 마음 편했다. 그래서 친정엄마를 중심으로 자매가 가까이 모여 사는 사례가 많았다. 이모를 고모보다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영국 정신
미국에서 김밥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다. 더욱이 냉동김밥이다. 미국 마트 트레이조라는 곳에서 선보였는데, 한국 중소기업 ‘올곧’이 수출해 대박을 냈다. 김밥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더니 이제 국밥이 바통을 받을 모양이다.지난 13일 뉴욕타임스(NYT)가 ‘올해 뉴욕 최고의 요리 8선’에 한식당 ‘옥동식’의 돼지곰탕을 선정했다. 뉴욕시 3만4000여 곳 레스토랑 메뉴 중 국밥이 뉴요커의 여덟 손가락 안에 든 것이다. 뉴욕 진출 1년여 만에 이룬 성과다. 본점은 서울 서교동에 있다. NYT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라고 극찬했다. 맑은 육수에 얇게 썰어 올린 지리산 K버크셔 고명이 특징이다.국밥의 사전 의미는 끓인 국에 밥을 만 음식을 통칭한다. 설렁탕, 곰탕도 밥을 말면 국밥이고 순댓국, 선짓국, 해장국도 마찬가지다. 부산 돼지국밥과 곤지암 소머리국밥, 전주 콩나물국밥은 아예 고유 이름까지 얻었다.국밥의 기원은 여러 설이 있으나 조선시대 윤국형이 지은 <문소만록(聞韶漫錄)>에 ‘얇게 썰어 조린 소고기를 장국에 말은 밥 위에 얹어 먹었다’라는 기록으로 봐 간을 한 국에 밥을 만 것이 원형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장국이 고깃국으로 발전했을 것이란 추론은 합리적이다. “주모~. 여기 탁주 한 사발 하고 국밥 하나 내오슈” 하는 대사가 사극에서 입에 착착 붙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삶에 스며들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국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최근 농식품부가 지정한 올 하반기 해외 우수 한식당 5곳에도 눈에 띄는 곳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삼부자’다. 국밥, 해장국 등
“가우, 가새, 고새, 가시개~.”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이다. 언어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꽤 인상 깊었을 듯싶다. ‘우리 동네는 깍개라고 했는데, 가쇠라고 했지, 아녀 가셍이라고 했어’라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아쌀하게 붙어 부러!” 영화 황산벌은 포스터부터 아쌀했다. 연기라면 멱살을 잡는다는 이병헌이 출연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나가 오늘 무사 이추룩 손님이 없나 해서.” 셋 다 절절하기가 무량수전이다. 하지만 여러 층위와 모호한 경계로 혼돈 그 자체인 언어 복잡계에서 방언, 사투리는 서자(庶子) 취급을 받고 있다. 표준어의 잘못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표준어가 자기 땅켜를 가진 만큼 사투리도 자기 구름층을 내려깔고 있다. 무 자르듯 깍뚝썰기로 요리할 순 없다. 표준어 정책을 찬찬히 재고해야 할 이유다. 서울말도 표준어 이전엔 지역어표준어라는 개념은 근대국가 성립 시기에 등장했다. 한국 표준어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1912년 보통학교 언문철자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경성말(서울말)’을 명문화했다. 이 ‘표준어’는 일본 영문학자 오카쿠라 요시사부로가 ‘standard language’를 번역해 사용한 것을 재수입한 것이다. 1933년 맞춤법통일안에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못 박았다. 새겨야 할 것은 서울말도 방언의 하나라는 점이다. 비표준어라는 말에는 편견이 담겨 있다. 잘못된 말, 쓰지 말아야 할 말이라는 족쇄다. 국어기본법은 공문서와 교과서엔 반드시 표준어를 쓰도록 명시했다. 언론과 방송에도 표준어 확산에 책임을 지웠다. ‘택도 없다’를 ‘턱도 없다’로 고쳐 쓸 때마다 기자가 고민에 빠지는 연유다. 택도 없다는 경상,
조니 뎁을 닮은 청년이 20대 여성에게 물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스타벅스 앞에서. “왓 컨트리 알 유 프롬, 재팬?” 아녀. “차이니스?” 아니라니까.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더 이상 생각나는 곳이 없다는 듯. 우리가 서울에서 서양인을 보면 다 미국 사람으로 아는 것처럼 그들도 동양인을 만나면 대부분 일본 아니면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한국은 그만큼 변방이다. 그들은 세 나라 사람의 차이를 모른다. 우리가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려는 이유다. 문화는 정치적이다. 핵심엔 언어가 있다.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원주민과 처음 접촉했을 때 말은 안 통했어도 몸짓은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목적이 달랐으니 충돌은 불가피했다. 영국인들은 원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정착촌 시드니를 건설했다. 원주민 언어는 소멸해갔다. 제국주의의 흔적은 지구상 언어 지도로 남았다. 달러가 기축통화인 것처럼 오늘날 기축언어는 영어다. 기축언어의 역사는 기축통화보다 길다. 유럽에선 한때 라틴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고, 동양에선 한자가 그랬다. 영어의 지배력은 달러보다 강하다. 20년 전 도광양회하던 중국이 굴기하기 시작했다. 먼저 공자학원을 각국에 수출했다. 가까운 한국부터 공략했다. 세계 처음으로 2004년 서울에 공자학원이 생기자 공짜로 중국어를 배우려는 학생과 회사원이 몰렸다. 이후 미국(118개), 일본(108개), 이탈리아(69개), 호주(57개) 등에 똬리를 틀었다. 하지만 공자 이름 뒤엔 마오(毛澤東)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렀지만 우린 아직 허기졌다. 한국어는 사용 인구 23위의 유라시아대륙 끝머리 변두리 언어에
킬러 광풍이 지나갔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부와 여당은 대책을 마련한다고 부산을 떨고, 언론은 연일 탈주범 추격하듯 보도했다. 6월 15일 발언 이후 열흘 동안 킬러 문항 관련 기사가 2251건 쏟아졌다. 일타강사가 사교육의 원흉으로 지목되자 국세청은 즉각 세무조사에 나섰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다. 늘 이런 식이다. 교육 개혁은 입시라는 뻘밭에 빠져 물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속눈썹 밑 다래끼 째기에 바쁘다. 많은 전문가가 방책을 제시하지만 교육이 본질적으로 보상 시스템이라는 점은 간과한다. 게다가 한국 교육열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옛날에도 시험은 치열했다. 조선시대 과거(科擧)에는 수십만 명까지 응시했다. 1800년(정조 24년) 순조의 세자 책봉을 기념하는 특별 과거엔 21만5417명이 시험을 치렀다. 최종 합격자는 12명.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응시 인원 44만7669명 중 SKY 의대 선발 인원 351명과 비교해 치열하기가 바늘구멍이다. 이렇게 출세하기 위해 20년, 30년 공부한 서생이나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불사하는 수능 응시자가 원하는 결과는 하나다. 확실하고 안락한 미래, 투자한 것에 비례하는 보상이다. 한국에선 수능 시험 한 번으로 경제적, 사회적 효용이 평생 따라온다. 그래서 유치·초등 의대반이 생기고 학부모가 몰린다. 한국은 돈이 지배하는 사회로 바뀐 지 오래다. 재력과 명망 있는 변호사가 50억원과 포르쉐 자동차의 유혹에 빠질 정도다. 사농공상의 유교 직업의식마저 DNA에 깊이 새겨져 있다. 월 1000만원 번다는 타일공을 하겠다고 나서는 젊은이는 많지 않다. 20대 여성 도배사와 트럭운전사가 SNS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희귀해서다. 최저임금
윤석열 정부 정책에 ‘킬러’가 풍년이다. ‘킬러들의 수다’라는 영화 제목까지 얼핏 떠오른다. 언어는 인간만 사용한다고 얘기하면 옛날 사람 취급당한다. 침팬지도 언어로 소통하고 나이팅게일도 자기들 말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징 언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킬러 문항’ ‘킬러 규제’ ‘킬러 카르텔’. 윤 정부의 아젠다 어휘다. 어떤 어휘를 반복하면 각인 효과가 커진다. 언론이 군불을 때주기도 한다. 킬러 콘텐츠는 기본이고, ‘고막 킬러’에 ‘트위터 킬러 스레드’ 등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 커다란 프레임을 짠다. 야당에서는 ‘킬러 정권’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손톱 밑 가시’에서 ‘대못’, 그리고 ‘전봇대’로 확장했다. 효과는 괜찮은 편이다. 국민과 정책 시행자에게 명확한 언질을 주기 때문이다. 정권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목표도 단순하고 명확하게 제시한다. 하지만 언어는 잘못 만들면 종종 수렁에 빠진다. ‘시럽급여’가 단적인 예다.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서사가 부족했다. 달의 앞면은 잘 가리켰지만 뒷면은 보지 못했다. 유연성을 핵심으로 하는 근로시간 개편은 발표 자료의 몇몇 문구 때문에 ‘주 69시간제’로 되치기당했다. 규제 혁파는 무척 어렵다. 뭔가를 힘겹게 없애고 나면 또 다른 규제가 좀비처럼 살아난다. 박근혜 정부는 탄핵 직전까지 총 1507건의 규제를 완화했다. 741건은 법령 개정, 766건은 행정 규제를 개선했다. 그러는 사이 새 규제가 1243건 생겼다. 임기 내내 적폐 청산을 외친 문재인 정부는 규제 완화 7315건에 새 규제 2866건을 기록했다. 국민은 별반 체감하지 못했다. 대못이든 킬러든 겨냥하는 과녁은 같다. 혁신
지난봄 방영한 TV 예능 프로그램 ‘내친나똑’(내 친구들은 나보다 똑똑하다)을 보다 깨달았다. 세상에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찮은 지식과 능력으로 자리를 탐할까. 이 프로그램은 퀴즈 예능이다. 연예인 한 명과 그 친구 셋이 한 팀을 이뤄 다양한 퀴즈를 푼다. 문제는 창의력, 수리력, 추리력을 발휘하는 양식이다. 친구들은 변호사, 일타강사, 의사, 유명 식당 최고경영자, 수능 수리 만점자 등 다양했다. 이 경합의 핵심은 협업이다. 나보다 똑똑한 친구의 머리를 빌려 우승에 도전한다는 콘셉트다. 맞다. 나보다 똑똑한 친구는 많다. 정의로운 사람도 많다. 착한 사람은 넘친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은 죽는 일뿐이다. 내 죽음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은 누군가 대신할 수 있다. 내친나똑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지 알려준다. 광복 이후 이승만은 나 말고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만 민족과 국민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국부’라는 소리를 듣고 미소 지을 수 있었겠는가. 박정희 대통령도 자기가 없으면 국가가 무너질 듯 행동했다. 유신은 잘 포장한 ‘나 아니면 안 돼’의 존재 증명서였다. 절정은 김영삼, 김대중의 1987년 단일화 실패다. 국민이 그렇게 원했건만 결국 따로 대선 후보로 나서서 권력을 놓쳤다. 군사 정부는 5년 더 갔다. 그들은 곡절과 번복을 거쳐 염원하던 대통령 자리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무엇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나. 그의 주변인 다섯이 시차를 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걸리
나는 교열기자다. 나의 뇌지도에는 전두엽에 이, 측두엽에 ‘한글 맞춤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쓰기와 읽기가 자유롭지 않다. 짜맞춤가구의 장부와 장붓구멍이 꽉 조이게 맞춤하는 글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짜임과 맞춤에는 치수가 있고 형식이 있고 기술이 있다. 교열기자를 옥죄는 짜맞춤은 맞춤법, 정서법이다.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민중서림의 를 뒤적였고, 그 뒤로는 과 의 팔랑한 종이를 침 묻혀 넘겼다. 1680년 리슐레의 이 세상에 나온 이래 각국의 모국어 사전 편찬은 사실상 민간 영역이었다. ‘대박’ ‘오빠’ 등이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올라간 은 옥스퍼드대가 발간한다. 일본어 사전 (이와나미쇼텐)과 중국어 사전 (상무인서관)도 그렇다. 은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가 쌓아 올린 금자탑이다. 언어생활 통제하는 표준언어는 태생이 혼돈의 복잡계다. 여러 층위가 있고 경계도 모호하다. 그래서 쪼개기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연구자가 규칙을 만든다. 사전은 그 결과물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준’이 붙은 이유가 무엇일까. 1991년 국립국어원이 출범했다. 가장 먼저 사전 편찬에 착수했다. 7년 만인 1999년 한글날 표준국어대사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준이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당시 민간 출판사가 활발히 국어사전을 펴냈다는 점에서 국가기관이 선보인 사전은 생경했다. 민간 사전은 이 사전이 나온 뒤 대부분 사라졌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은 다 말하기 뭣하다. 오죽하면 이 사전을 비판한 이 나왔을까 싶다. 도 있다. 이렇게 오류를 지적한 책이 여럿 나온 사전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준이 붙으면서
창극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3월 웹툰 원작의 ‘정년이’가 매진 사태를 빚더니 최근 막을 내린 국립창극단의 ‘베니스의 상인들’도 좌석을 다 팔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화석화한 무대극이 르네상스를 맞을 조짐이다. 공연 문화의 정수는 오페라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 꽃을 피운 이후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최근엔 나이 든 관객만 극장을 찾아 고민이라고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음악극의 최고 상품은 19세기 영국에서 탄생한 뮤지컬이다. 오페라와 오페레타 등의 요소에서 대중적 서사와 춤, 무대장치 등으로 버라이어티를 앞세운 것이다. 오페라가 귀족의 가면놀이라면 뮤지컬은 서민의 복면가왕인 셈이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선 매일 뜨는 태양처럼 뮤지컬 공연이 펼쳐진다고 한다.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웨이 인기작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넘어간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 ‘위키드’ 그리고 ‘시카고’ 등이다. 이들은 버전을 달리하며 초장수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종장을 맞은 최장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35년 동안 브로드웨이를 지켰다. ‘시카고’(1996년 현 버전 초연), ‘위키드’(2003년)는 현재 진행형이다. 조선 뮤지컬 창극은 판소리에 연기를 입힌 음악극으로, 여러 소리꾼이 배역을 나눠 맡았다. 마당놀이가 서사에 집중하고 해학에 초점을 뒀다면 창극은 음악과 연극적 요소를 부각했다. 1902년 협률사에서 ‘춘향전’이 처음 막을 올린 이후 부침을 겪었고, 광복 후 여성 국극 등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시들해졌다. 그러던 창극이 매진 행진에 이어 오는 8월에는 뮤지컬의 본고장 영국에서 공연한다고 한다. 국립창극단의
불금이다. 약속이 없더라도 한잔 술이 생각나는 날이다. 불금은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규범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은 속어다. 속어는 대중이 많이 사용하지만 상스러워 규범 언어에선 받아들이지 않는다. 술의 역사가 축제와 의례에서 비롯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마셨다는 얘기다.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우면 사는 게 힘들어 사람들이 술을 더 찾는다고 한다. 게다가 정치가 모두를 답답하게 하니 화가 쌓인다. 오죽하면 ‘빡치주’, ‘개빡치주’가 나왔을까. 유명 음식사업가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빡치주와 개빡치주는 이마트24가 왓챠와 협업해 출시한 증류식 소주다. 빡치다는 ‘무척 화가 난다’는 뜻을 지닌 비속어다. 개빡치다는 거기다 정도가 심할 때 쓰는 접두사 개-를 붙인 것이다. 1990년대 처음 등장했다. 우리나라 전통술의 기원은 대부분 지방 가양주(家釀酒)다. 많이 알려진 안동소주가 그렇고 문배주도 마찬가지다. 청주가 많고 소주는 상대적으로 적다. 이들 술의 이름은 술맛의 특질을 살리거나 지역을 앞세운다. 문배주는 문배 향이 난다 하여 이름 붙였고 안동소주와 진도 홍주는 지역이 앞선다. 희석식 소주의 대명사 ‘진로(眞露)’는 1924년생이다. 올해 백수(白壽·99)를 맞는다. 이슬을 먹고 사는 신선의 술이라는 은유가 은연중 비친다. 1998년 순우리말 ‘참이슬’로 개명했다. 참이슬의 경쟁 소주는 ‘처음처럼’으로, 우리말에 우리말로 대응했다. 이 밖에 ‘잎새주’ ‘한라산’ 등 소주 이름에서만큼은 한국어가 대세다. 한국어지만 빡치주와 개빡치주가 불편한 것은 비속어이기 때문이다. 비속어는 제한적
챗GPT가 흥하다. 오픈AI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공개한 뒤 놀라운 능력에 모두 전율했다. 와우! 의사시험 통과에 법학 석사과정 시험 B학점이라니. 기사 쓰는 것은 몇 분 걸리지도 않는다. 리포트 작성은 학생들에게 일상이다. 자기소개서와 면접답안 예시 등 취업준비생에게도 필수 도구다. 광고 카피는 물론이고 소설도 쓴다. 그림은 이미 작가 반열에 올랐다. 방송도 만든다. 조만간 비대면 진료까지 할 태세다. 기업가들은 빠르게 금빛을 확인했다. 챗GPT가 숨겨 놓은 금맥을 찾아 질주하고 있다. 먼저 깃발을 꽂기 위해 채찍질을 하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챗GPT는 티핑 포인트를 넘었다. 진화한 범용 AI와 궁극의 초지능 AI가 휘몰아칠 미래는 패러다임 전환이 아니라 신세계 탄생을 예고한다. 산업혁명을 초월한 에이아이즘(AIism)의 세계다. AI 로봇이 인간 노동 대체해로봇은 AI가 지배하는 신세계의 노동자다. 치킨을 튀기고 커피를 내린다. 자동차 생산은 오래전 그들 몫으로 돌아갔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노조가 조립라인에서 분투하고 있지만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다. 집사 로봇이 요리하고 청소하고 말벗까지 해준다. 자율차는 기본이고 인프라와 서비스 대부분을 클라우드에 접속한 AI 로봇이 담당한다. 영화 ‘아이, 로봇’의 실재화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35년, 기술 발전 속도를 보면 시간이 더 당겨질지 모른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인간의 가까운 미래 운명이. 인간은 우연히 얻은 불을 사용하면서 자연을 정복했다. 언어는 협업 도구였다. 그들은 이제 자연을 넘어 우주 질서를 다시 규정하려 하고 있다. 노동에서 해방하려고 한다. 하지만 AI가 네트워크와 정보를 장악하고 로봇이
‘막내아들이이쪽저쪽에서튀어오르는새끼벌레를보고난리법석을떨어모두들숨넘어갈듯이웃었다.’ TV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에서 달인 문제로 나온 띄어쓰기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번 풀어보시라! 출연자가 선택한 답은 ‘막내 아들이 이쪽저쪽에서 튀어오르는 새끼 벌레를 보고 난리법석을 떨어 모두들 숨넘어갈 듯이 웃었다.’이다. 과연 맞았을까. 필자는 틀렸다.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교수도 어렵다고 하는 띄어쓰기. 하물며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은 오죽할까. 그들은 곤혹스럽고, 어려운 것으로 띄어쓰기와 경어법을 들었다. 둘 다 본질적으로 외워야 하는 것이다. 애들한테는 밥, 어른에게는 진지, 오래전은 붙이고 얼마 전은 띄고…. 고통지수가 더 큰 것은 띄어쓰기였다. ‘우리말 겨루기’에서 하도 달인이 탄생하지 않자 방송사는 띄어쓰기 문제의 수준을 한참 낮췄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알다시피 훈민정음은 원래 띄어쓰기가 없었다. 당시 주류 언어인 한문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영향이 크다. 그런데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1446년 9월 정음 반포 이후
‘막내아들이이쪽저쪽에서튀어오르는새끼벌레를보고난리법석을떨어모두들숨넘어갈듯이웃었다.’TV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에서 달인 문제로 나온 띄어쓰기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번 풀어보시라! 출연자가 선택한 답은 ‘막내 아들이 이쪽저쪽에서 튀어오르는 새끼 벌레를 보고 난리법석을 떨어 모두들 숨넘어갈 듯이 웃었다.’이다. 과연 맞았을까. 필자는 틀렸다.국립국어원장을 지낸 교수도 어렵다고 하는 띄어쓰기. 하물며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은 오죽할까. 그들은 띄어쓰기와 경어법이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애들한테는 밥, 어른에게는 진지, 오래전은 붙이고 얼마 전은 띄고…. 고통지수가 더 큰 것은 띄어쓰기였다.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알다시피 훈민정음은 원래 띄어쓰기가 없었다. 당시 주류 언어인 한문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영향이 크다. 그런데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1446년 9월 정음 반포 이후 430년 이상 띄어쓰기한 움직임이 없었다. 맞춤법 규정이 부른 혼란서양인들은 달랐다. 영국인 존 로스가 1877년 한국어 교재 <조선어 첫걸음>에서 띄어쓰기를 처음 도입했다. 영어식 띄어쓰기였다. 20년 뒤 한국인이 발간한 독립신문 창간호 사설은 의미심장하다. “언문으로 쓰는 것은 남녀 상하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오, 또 구절을 띄어 쓰는 것은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다”고 한글 전용과 띄어쓰기 이유를 밝혔다. 세종의 정음 창제 이유, ‘어엿비 녀겨’와 맥을 같이한다. 몇 백년 동안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불편을 참았을 뿐이다. 그렇게 ‘알아보기 쉽게 한’ 띄어쓰기가 127년이 지난 오
새해 벽두에 브라질이 난자당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1주일 만이었다. 대통령궁, 연방의사당, 대법원, 국가의 요체가 시민들에게 점령당했다. 집무실이 불타고, 유리창이 깨지고, 국보급 예술품이 부서졌다. 시위대는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부르짖었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는 그들을 지지한다고 했다.이 장면 어디선가 봤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DC 의사당을 폭력으로 장악한 시위대가 환호하는 장면이 TV 화면을 가득 채웠다.이들 판박이 장면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해 빼앗긴 권력을 폭력으로라도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일찍이 로크는 <통치론>에서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부정의를 저지른다면 주권자인 시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인민의 주권을 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확증편향은 이성판단 실패 불러브라질과 미국의 시위대는 저항권을 행사했다. 투표로 결정한 시민 정부에 불복했다. 투표가 부정의했다는 것을 이유로 제시했지만 두 나라에서 부정투표가 있었다는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항권은 정당했을까.문제는 늘 ‘현상의 오독’에서 발단한다. 대부분 사람은 정의가 자기 가까이에 있다고 믿는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는 평소 상대 운전자에게 예의를 지킨다’고 답한 사람이 85.4%였다. ‘요즘 도로 위에는 지킬 것을 지키지 않는 운전자가 너무 많다’고 응답한 사람도 72.2%에 달했다. 한마디로 나는 정의로운데 너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결국 나의 옳음은 디케의 저울이 수평을 가리킨다고 믿고 상대방 저울은 기울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고선 상대가 확
‘무함마드인가, 빈살만인가.’연전에 교열계 한 인사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관련해 지칭으로 ‘무함마드’를 쓰는 데 동참할 의사가 없냐고 했다. 명분은 ‘빈살만’이 성(姓)이 아니니 현지에서 사용하는 이름으로 쓰는 게 맞다는 것이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사우디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대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시 주석과 웃으며 악수했다’ 식으로 말이다.아랍인은 본인 이름, 선대 이름, 가문 이름 식으로 작명한다고 한다.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세자의 아버지는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다. 빈살만은 살만의 아들, 알사우드는 사우드 가문을 뜻한다. 그러니 지칭할 때 ‘빈살만 왕세자’로 받는 것은 틀린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름 무함마드로 쓸 때 성과 경칭으로 지칭하는 우리 관습과 충돌한다.무함마드를 선택한 신문 매체는 서울신문 경향신문 한겨레 등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는 빈살만을 고수했다. 언어 관습에 옳고 그름 없어<논어>에 나오는 ‘자왈(子曰),’은 동양에서 가장 오랜 지칭 사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란 뜻이다. 자(子)는 성현의 반열에 이른 사람에게 붙이는 경칭이다. 선생님은 공자(孔子)를 일컫는다. 공자의 이름은 구(丘)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칭 관습이 ‘김 대표는’ 식의 성과 직함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를 만들어냈다.한·중·일은 뉴스에서 2차적으로 사람을 지칭할 때 성을 쓴다.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첫머리에 썼으면 다음부터는 윤 대통령으로 받는다. 이는 영미권도 마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이는 하이데거다. 모든 인간은 언어 안에 존재한다. 이 땅에선 한국어로 꿈꾸고 한국어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언어는 같은 말을 사용하는 집단의 문화와 역사, 그 표면이다. 그것은 세대를 넘어 유전한다.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켜내기 위한 분투는 이런 철학적 바탕에 근거했다. 그 후예인 우리는 다국적 언어의 쓰나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티켓을 미리 겟해서 웨이팅 없이 세팅이 됐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로, 외래어 남용을 지적한 예다. 우리말 지킴이가 아니라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극단적 사례이겠지만 외래어 침습은 한국어에 가장 큰 도전이다. 고유어 지킴이들은 한자어 사용까지 문제 삼는다. 우리말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외래어는 무조건 쓰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은 온당한가. 死語는 자연선택의 결과놈 촘스키는 언어가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고 했다. 언어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멸한다. 우리말을 보존하고 지키자는 명제는 다분히 도덕적이다. 우리말 지킴이들은 죽은 언어조차 되살려내려 애쓴다. 하지만 죽은 말은 다 이유가 있다. ‘자연선택’이다. 다윈 진화론의 요체다. 언어의 일생에도 이 말은 합목적적이다.고뿔이라는 말이 있다. 겨울이 오면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광고가 방송을 탔다. 고뿔은 감기에 밀려 죽은 단어다. 감기는 한자어, 고뿔은 순우리말이다. 빵이 포르투갈어 pao에서 왔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가방은 네덜란드 출신이다. 이들은 일본어를 거쳐 우리말에 정착했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보라매, 수라는 몽골이 고향이다. 모두 귀화어다.2001년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다. 새로운 존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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