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폭행하던 범인 막다 납치돼…2주 만에 야산서 숨진 채 발견
유일한 목격자 할아버지도 세상 떠나 범인 추적 난항
[사라진 가해자들] ⑤ 그날 밤 무슨 일이…대구 허은정 양 납치 살해 사건
대구 달성에서 15년 전 발생한 여자 초등학생 납치 살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찰은 사건 초기 가출 가능성을 놓고 수사하다 납치나 성폭행 등 강력사건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해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대구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사건 수사 기록 등을 토대로 추적하고 있지만 범인의 행방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 사건 발생과 시신 발견
2008년 5월 30일 오전 4시 10분께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허모(72)씨 집 큰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허씨가 혼자서 잠을 자는 방에 누군가가 들어와서는 "한번 죽어봐라, 당신은 맞아야 돼"라며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작은 방에서 동생과 잠을 자던 허은정(당시 11살·초등6년)양은 잠에서 깨어 큰 소리가 나는 할아버지 방으로 냉큼 달려갔다.

허양은 있는 힘껏 남성을 붙잡고 말렸으나 폭행은 이어졌고 괴한은 이윽고 허양마저 납치해 달아났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허씨의 진술에 따라 원한 관계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허씨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벌이고 사라진 허양 찾기에도 진력했다.

허씨 집 주변 수색에 나선 지 2주일이 지난 6월 12일 집에서 1.5㎞가량 떨어진 유가면 속칭 용박골 6부 능선에서 허양이 피랍 당시 입고 있던 반바지와 티셔츠 등 옷가지가 발견됐다.

조금 더 올라간 8부 능선에서는 허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임도에서 5m가량 떨어진 비탈길에 알몸 상태로 엎드린 모습이었으며 시신은 심하게 부패해 있었다.

[사라진 가해자들] ⑤ 그날 밤 무슨 일이…대구 허은정 양 납치 살해 사건
◇ 경찰, 단순가출→납치·성범죄 가능성 수사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정황 등으로 미뤄 허씨 주변 인물의 소행으로 보고 비공개 수사를 벌였으나 진척이 없자 사건 발생 닷새째부터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실종아동경보 시스템인 '앰버경보'를 발령하고 인근 지역 경찰에 공조를 요청하는 한편 사건 수사전담팀을 수사본부로 격상했다.

전단지 1만7천장을 만들어 배포하고 최고 5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었으며 경찰관과 자율방범대원 등 가용 인력을 총동원해 허양을 찾는 데 주력했다.

경찰은 당초 납치 사건이라고 확산하지 못했다.

협박이나 금품 요구 전화가 없는 등 일반적인 납치사건과는 양상이 아주 달랐기 때문에 가출 등 다른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러나 허양 할아버지의 진술 등으로 볼 때 개인적 원한으로 허양 할아버지를 폭행하던 범인이 이를 목격한 허양을 우발적으로 납치했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했다.

2주간의 수사에도 허양이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경찰은 성범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인근 불량배, 성범죄 전력자 등까지 수사 범위를 넓혔다.

허양 주변 인물과 일대 우범자 등 60여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사건 당일 행적을 조사하기도 했다.

또 허양 시신 주변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이 발견돼 유전자 감식을 벌이기도 했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는 등 난항을 거듭했다.

[사라진 가해자들] ⑤ 그날 밤 무슨 일이…대구 허은정 양 납치 살해 사건
◇ 유일한 목격자 할아버지의 죽음
허양이 숨진 채 발견된 후 유일한 사건 목격자로 남은 할아버지 허씨가 사건 발생 84일 만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허씨는 사건 발생 후 두 달 넘게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고통을 겪다가 숨진 것으로 알려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가정 사정이 있어 아버지 대신에 할아버지가 손녀와 손자를 돌보고 있었던 터라 안타까움은 더 컸다.

이렇게 사건 당시 상황을 증언해 줄 2명이 잇따라 숨지면서 사건 수사는 사실상 미궁에 빠져들었다.

목격한 범인이 1명인지 2명인지 명확하지 않아서 몇 차례 허씨를 상대로 최면수사까지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사라진 가해자들] ⑤ 그날 밤 무슨 일이…대구 허은정 양 납치 살해 사건
◇ 15년 지났으나…경찰 "반드시 잡는다"
허은정 양 납치 사건은 현재 대구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맡고 있다.

지난 2015년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살인죄의 공소 시효가 없어진 만큼 언제든지 범인을 잡아서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 발생 15년이 지났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사건 해결이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사건 수사 기록을 토대로 단서 찾기에 주력하는 한편 기존 증거물을 다시 감정하는 등 허양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힘쓰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장기 미제사건이라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