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박물관 2층 창가에는 그가 쓰던 책상과 낡은 타자기가 놓여 있고 벽에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헤세박물관 2층 창가에는 그가 쓰던 책상과 낡은 타자기가 놓여 있고 벽에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독일 문호 헤르만 헤세가 후반생을 보낸 루가노 호숫가의 작은 마을 몬타뇰라. ‘스위스 속의 이탈리아’로 불리는 곳이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푸른 호수가 바다처럼 넓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옮겨가는 신록의 그림자가 물빛에 반짝이며 아른거린다. 헤세는 죽을 때까지 43년을 이곳에서 지냈다. 그 유명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을 여기에서 썼다.

정신적 고통 달래준 '미술 테라피'

[고두현의 문화살롱] 헤세 문학은 '치유 미술'이자 '악보 없는 음악'
그가 살던 집 옆에 4층짜리 헤세 박물관이 있다. 햇볕이 잘 드는 2층 창가에는 오래된 타자기가 놓여 있고 자필 원고, 주치의와 주고받은 편지, 사진과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건물 옆으로 펼쳐진 ‘헤세의 길’을 따라가면 2시간30분 정도의 산책 코스가 이어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한나절을 고즈넉하게 보내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한창 이름 날리던 중견작가는 왜 이곳 스위스 변방의 외딴 마을로 이사를 왔을까.

그 배경에는 헤세의 정신적 고통과 치유를 위한 행로가 숨겨져 있다. 헤세에게 첫 번째 닥친 시련은 1차 세계대전이었다. 헤세가 평화를 호소하는 글을 발표하자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조국 배신자, 전쟁 기피자” 등의 비난을 퍼부으며 걷잡을 수 없는 공격을 가했다. 그 와중에 셋째 아들이 뇌막염으로 사경을 헤맸다. 첫 부인은 극심한 착란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모친에 이어 부친까지 작고하는 우환이 겹쳤다.

전쟁통에 더욱 폭력적으로 변한 여론 때문에 독일에서는 작품을 출판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한꺼번에 닥치자 자신도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했다. 이때 그의 심리 치료를 담당한 의사가 저명한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수제자였다. 그에게 그림 치료를 받은 헤세는 꿈속의 형상들을 하나씩 묘사하며 미술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헤세가 그린 꿈속 형상 중에 특이한 형태의 새가 있다. 수탉이나 꿩 같은 몸통에 화려한 공작새 꼬리를 지닌 새가 덤불 속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헤세가 <꿈 일기>(1917)에서 “길가의 덤불 속에 반쯤 몸을 숨기고 있는 새 한 마리를 보았다. (…) 형형색색의 커다란 꼬리를 지닌 그 새는 아름답고 화려했다”고 말한 바로 그 새다.

이는 2년 뒤 출간된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이미지로 되살아났다. 싱클레어가 알을 깨고 하늘로 날아가는 황금색 머리의 새 그림을 보내자 데미안이 다음과 같은 메모를 보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이런 연관성은 헤세의 내면에 감춰진 잠재 능력에서 발원했다. 그는 조국의 광폭한 비난을 피해 이곳 몬타뇰라로 옮겨온 후 안정을 되찾고 더 많은 그림을 그렸다. 주로 산책길의 풍경을 펜과 연필화, 수채화로 남겼다.

그는 “스케치하고 그림 그리는 것은 내게 깊은 휴식을 준다”고 말했다. 점점 용기를 얻은 뒤에는 문학 작품에 삽화를 넣는 시도까지 했다. 동화 <험난한 길>과 <산책>에 그림을 곁들였고, 10편의 시와 그림을 담은 시화집 <화가의 시>까지 출간했다.

이렇게 남긴 그림이 3000장이 넘는다. 독자들에게 보낸 답장 편지와 엽서가 3만5000장에 이르는데 여기에도 작은 그림들을 곁들여 보냈으니 실제 그림은 더 많다. 헤세에게 그림은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안식처이자 문학적 영감에 자극을 주는 자양분이었다.

헤세의 내면을 비추는 또 다른 길은 음악이다. 그는 위대한 작곡가의 선율에 온몸을 맡기며 전율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나서 “우리는 젖은 눈시울로 일어서며 영혼의 터전 구석구석이 진동하고 경고받고 비난받고 정화되고 화해하는 것을 느낀다”며 경탄하곤 했다.

내 속엔 어떤 화가·음악가 있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노년의 헤세.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노년의 헤세.
그는 모차르트와 바흐를 특히 좋아했다. 모차르트 음악은 계시의 음악이자 피 안에서 울리는 음악, 바흐의 칸타타는 불멸의 음악이라고 평했다. 죽기 1년 전인 85세 때 그는 한 엽서에 “모차르트의 저 청량성, 천진무구함은 결코 어린이의 그것이 아니고 이 세상 깊은 속까지 다 알게 된 사람의 청량함이며 천진무구함”이라고 썼는데, 노년의 헤세가 바로 아이처럼 해맑고 지혜로운 현자였다.

어릴 적 바이올린을 배우고 오르간 연주에 매료된 그는 문학 작품에도 음악과 관련한 요소를 즐겨 넣었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신비에 젖고,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곁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예술적 친구 헤르만이 있다. 그는 문장의 호흡과 연주의 높낮이를 동시에 느끼는 감성을 지녔다. 그래서 그의 문학을 ‘오선지 없는 음악’이라고 부른다.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헤세의 꿈속 새.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헤세의 꿈속 새.
학자들에 따라 그의 작품을 소나타 형식과 푸가 형식으로 대별하기도 한다. <데미안>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소나타, 헤세의 사상이 집약된 노년의 걸작 <유리알 유희>는 푸가 형식이라고 보는 것이다. 음악학교에서 <유리알 유희>를 따로 배우는 이유 또한 헤세의 문장을 악보처럼 연주하면 그대로 음악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헤세의 시와 소설, 산문에는 치유의 물감으로 그린 그림과 영혼을 전화하는 음악의 화음이 함께 배어 있다. 이른바 전인적 융합예술의 표상이다. 박물관 벽에서 유리알 같은 눈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나에게 질문을 건네본다. ‘내 속에는 어떤 화가와 음악가가 잠자고 있는가.’

박물관 인근 성아본디오 성당 묘지의 헤세 무덤에서도 미술과 음악의 하모니가 느껴진다. 성당과 묘지를 잇는 소로길에 길쭉하게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그 광경이 한 폭의 그림 같고 천상의 선율 같다. 땅과 하늘을 잇는 영혼의 순례길이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