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 앞에 다가선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벨루가 '벨라'의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관람객 앞에 다가선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벨루가 '벨라'의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하얗고 긴 몸통으로 헤엄치며 지하 1~2층 수족관을 빙빙 돌더니 관람객들과 가까이 얼굴을 마주한다. 한참을 머물다가 다시 돌아간다. 이후 또다시 관람객들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걸듯 눈을 마주하고 머리 위로 도넛 모양 물을 내뿜는다. 친구 두 마리를 잃고 수족관에 홀로 남은 암컷 벨루가 '벨라'의 이야기다.

8일 오전 10시 30분께 찾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은 개장 시간에 맞춰 해양생물을 관람하러 온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가족 단위 손님들부터 커플, 현장 체험 학습하러 온 유치원~고등학생들까지 다양했다. 아쿠아리스트의 설명과 함께 '생태 설명회'가 진행되는 공간 앞에는 1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자리를 채웠다.
수족관 앞에 서니 천천히 다가오는 '벨라'. /영상=김세린 기자
수족관 앞에 서니 천천히 다가오는 '벨라'. /영상=김세린 기자
특히 사람들의 이목을 끈 건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마스코트로 불리는 벨루가 '벨라'다. 벨라는 지하 1층의 원형 수족관과 지하 2층의 대형 수족관으로 연결돼 있어 두 층에서 모두 관람할 수 있다. 벨라가 수족관 가까이 붙어설 때마다 사람들은 연신 "우와", "귀엽다"고 외치며 카메라 속에 벨라의 모습을 담아갔다.

롯데월드 관계자에 따르면 벨라는 매우 사교적인 성격을 가져 사람을 굉장히 좋아한다. 사람들과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온순한 성격을 가져 처음 본 사람들과도 곧잘 소통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날 만난 벨라는 아크릴 벽 가까이 다가와 관람객들과 눈을 맞추고 장난을 치는 듯한 모습, 한참을 머무르다 돌아가더니 원형 링을 가지고 돌아와서 장난치는 모습, 중간중간 입을 뻐끔거리거나 몸통을 연신 흔들어대는 모습 등을 반복해 보였다.
관람객들 앞에 다가와 눈을 맞추는 '벨라'의 모습. /영상=김세린 기자
관람객들 앞에 다가와 눈을 맞추는 '벨라'의 모습. /영상=김세린 기자
벨라를 보러온 이들 중 일부는 "보기에 귀엽지만 불쌍하다"는 이중적 감정을 내비쳤다. 벨라의 수족관 주변에서는 "혼자 남아서 불쌍하다", "바다에서 점프해야 할 애를 가둬 놓은 것" 등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아이를 데리고 온 주부 주모 씨(39)는 "벨루가가 아이 앞에 와서 장난치듯 가까이 오는 모습이 신기하고 귀엽다"면서도 "다른 친구들은 죽고 혼자 남았다니 어딘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현장 체험학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왔다는 인근 고등학생 원모 군(18)은 "평소 유튜브를 통해 벨루가는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수족관에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벨루가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여러 동물단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몸길이 3~5m인 벨루가를 7.5m 깊이 수조에서 키우는 게 동물 학대라고 지적하면서, 벨라를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으로 옮길 것을 지속 요구해왔다. 전문가들 역시 넓고 깊고 차가운 북극해에서 살아야 하는 흰고래류가 비좁은 수조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바다와 달리 소음, 진동을 유발하며 자유롭게 지낼 수 없는 수조는 흰고래들의 안정적인 서식처가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수족관 아크릴 벽 앞에 선 '벨라'의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수족관 아크릴 벽 앞에 선 '벨라'의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벨라가 앞서 친구 2마리를 잃고 홀로 오랜 기간 지내온 것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기존 이곳에는 벨라를 포함해 수컷인 '벨리'와 '벨로' 있었다. 하지만 2016년 4월 면역력이 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5세 벨로가 먼저 패혈증으로 폐사했고, 3년 후인 2019년 10월 12세 수컷 벨리가 뒤따라 폐사했다. 이후 수족관에는 벨라만 남게 됐고, 친구 2마리가 죽은 뒤에는 관람지점과 가까운 얕은 수조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이후 롯데월드 측은 2016년 동물보호연대와의 협약으로 고래류를 추가 반입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빌라가 마지막 흰고래가 될 예정이라고 밝혀왔다. 이렇게 벨라는 10년을 홀로 지내왔고, 벨라에 대한 방사 요구가 지속해서 제기됐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지난해 12월 16일 벨라가 머무는 수족관 앞에서 '벨루가 전시를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아크릴 벽에 붙이고 약 1분간의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수족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헤엄치는 '벨라'. /영상=김세린 기자
수족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헤엄치는 '벨라'. /영상=김세린 기자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족관 앞에 강력한 접착제가 도포돼 아크릴 벽 일부가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아크릴 벽의 상태를 살펴보니 자국 등은 남아있지 않고 새로 갈아 끼워진 상태였다. 롯데월드 측은 당시 현수막을 떼어낸 후 남은 접착제 분사 부위를 갈아내거나 녹이는 등 전시 수조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7억원을 파트너사에 지불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크릴 벽이 바뀌면서 향후 안전 문제, 수압 등을 계속 점검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롯데월드 측의 설명이다. 롯데월드 측은 재물손괴 및 업무 방해 혐의로 해당 단체 소속 활동가를 송파경찰서에 고소했다.

롯데월드 측은 벨라를 위해 현재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시위를 벌인 단체의 "롯데월드 측은 바다 방생을 위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과 관련, 롯데월드 관계자는 한경닷컴에 "바다 방생 계획은 확정된 상태로 올해 하반기에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에, 어떤 시점에 보낼 것인지에 대해 발표할 것"이라며 "벨라의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 벨라의 행복이 우리 입장에서도 제일 중요하다"고 밝혔다.
관람객들과 눈을 맞추며 장난을 치고 노는 '벨라'. /영상=김세린 기자
관람객들과 눈을 맞추며 장난을 치고 노는 '벨라'. /영상=김세린 기자
현재 벨라가 머무는 수족관 앞에도 "현재 벨루가는 새로운 바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다. 롯데월드 측은 "아쿠아리스트들의 보살핌 속에 매일 건강관리를 하고 있으며, 일 10회 이상의 자연 습성 행동 풍부화를 기초로 먹이 훈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며 "새로운 바다 환경에서 무리와 건강하게 잘 어울려 지내기 위한 야생 적응 훈련도 진행 중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벨루가가 바다 서식지로 가는 여정은 복잡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과정인 만큼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롯데월드 측의 입장이다. 롯데월드 측은 "해양수산부와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동물자유연대, 동물을 위한 행동, 고래 전문가 등과 함께 방류 기술 위원회를 발족해 지속 협의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며 "해외 전문가들과도 논의를 통해 벨루가에게 가장 적합한 바다 서식지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계별로 구체적인 추진 상황이 확정되는 대로 즉시 공개할 예정"이라며 "벨루가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바다 서식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