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실효적 韓美 핵협의그룹이 되려면
지난 4월 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핵협의그룹(NCG) 신설과 확장억제 강화가 핵심으로 핵우산 역사상 유례없고 독특한(sui generis)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형식 면에서 미국과 동맹국이 양자 차원에서 핵운용 협의를 약속한 최초의 정치적 선언이다. 미국은 작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미국과 동맹국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극단적 상황’에서만 핵사용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핵 선제 사용’과 재래전에서의 핵사용 정책 기조를 유지한 것.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외교 성명이나 정치적 선언을 통해 확장억제 공약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확장억제만을 다룬 정상 간 문서는 워싱턴 선언이 최초로, 확고한 안보 공약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내용 면에서, 확장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했다. 1978년 핵우산 공약을 도입한 이래 양국은 확장억제를 논의해 왔으나 제한적, 산발적이었다. 앞으로 한국은 수시 협의를 통해 정보 공유와 핵운용 관련 기획·실행 측면에서 실질적인 발언권을 가진다. 또한 핵잠수함 전개는 핵우산의 실효성을 강화할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3대 핵전력 중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폭격기를 포기하고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핵잠수함 한 척을 상시 잠행시킴으로써 핵보복 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핵잠수함의 전략적 가치를 웅변한다.

워싱턴 선언은 ‘이익의 균형’ 위에 성립됐다. 한국은 북한의 핵 선제공격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자 했다. 미국은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한·미 원자력협정 준수를 다짐받음으로써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균형은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나 핵무기 고도화 조치로 핵무장론이 다시 비등할 수 있다. 꼼꼼한 후속대책으로 NCG를 실효적 기구로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다.

억제의 요체는 공포다. 적에게 목표 달성이 실패하고 정권이 소멸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심어줘야 한다. 확장억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복 위협에 대한 신뢰성과 확장억제의 행사 의지가 필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핵공유체제의 핵심에는 전술핵무기가 있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튀르키예 5개국 6개 기지에는 3.5m, 300㎏의 초소형 수소폭탄인 B61 계열 전술핵이 배치돼 있다. 전술핵이 없는 상황에서 NCG 협의가 자칫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시뮬레이션 훈련을 실시해 분야별 작전 및 협력 상태를 수시로 점검해 발전시켜야 한다. 또 미국의 핵전력 운영 주체인 전략사령부와 함께 실무그룹을 만들어 수시로 접촉해야 한다.

한·미·일 3국 간 협의체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갓 출범한 NCG가 뿌리내리기 전에 확대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북핵 대처라는 초점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중국, 러시아와의 대결 구도로 비칠 수도 있다. 당장 중국이 아시아판 NATO 등장 가능성에 경계심을 보이는 이유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NCG의 토대를 다지는 데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비핵화라는 한·미의 공통 목표는 확장억제 강화만으로 달성할 수 없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관여 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이 ‘담대한 구상’을 거부하고 도발을 계속하고 있어 대화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튼튼한 국방과 확장억제를 기반으로 외교를 모색하는 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