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견을 인정받은 하청업체 근로자가 최대 10년치 임금 차액을 원청에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다. 하청이 아닌 원청 정직원으로 일했으면 더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산정하는 기간을 10년까지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원청으로선 소송에서 패소하면 하청 근로자 직접 고용뿐 아니라 대규모 손해배상 부담까지 떠안게 될 전망이다. 손해배상 산정 기간이 10년까지 허용되면서 불법파견을 둘러싼 소송이 더욱 빗발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직접고용에 거액 배상 부담까지

대법 "하청 불법파견 인정땐 정직원과 임금차액 10년치 줘야"
3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3부(재판장 이흥구 대법관)는 삼표시멘트의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최근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파견 상태로 인정하면서 이들을 삼표시멘트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근로자들의 주장대로 차별적 처우에 따른 손해배상의 소멸시효를 10년으로 잡아야 한다고 봤다. 파견법은 2년 이상 파견근로자로 근무한 직원은 사업주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사업주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임금 차별을 받는 파견 근로자에게 차별이 없었더라면 받을 수 있는 적정한 임금과 실제 지급받은 임금의 차액에 상당하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원고들의 손해는 (삼표시멘트의) 새로운 불법행위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법 제766조에 따라 손해배상의 소멸시효를 10년으로 봐야 한다는 원심엔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근로자들은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에서 컴프레서, 펌프, 보일러 등을 운전하고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2018년 “삼표시멘트 측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지휘·명령을 받고 있다”며 원청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청 근로자였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에서 하청 근로자로서 실제로 받은 임금의 차액 10년치를 손해 배상 명목으로 지급해달라고도 요구했다. 삼표시멘트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봤기 때문에 배상액도 임금채권 소멸시효(3년)가 아니라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10년)를 적용해 계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삼표시멘트 측은 “불법 파견으로 인정되더라도 손해 배상액은 3년치 임금 차액으로 봐야 한다”고 맞섰지만 법정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도 근로자들의 주장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비상 걸린 기업들…소송 빗발칠 듯

이번 판결로 파견근로 소송에서 패한 기업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 진행될 불법 파견 소송에서 근로자들이 10년치 임금 차액을 손해배상액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이전까지 진행됐던 불법 파견 소송에선 근로자들이 임금채권 소멸시효(3년)를 적용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게 대부분이었다. 당초 예상보다 배상 규모가 3.3배까지 뛸 수 있다는 얘기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근로자들을 불법 파견 소송에 적극 뛰어들게 한 주요인 중 하나가 손해배상금이었다”며 “이전보다 훨씬 많은 배상금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불법 파견 소송에 나서는 하청 근로자가 대거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법원에선 하청 근로자의 불법 파견 주장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포스코에 “광양제철소 협력업체 직원 59명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데 이어 지난달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협력업체 근로자 124명을 파견 근로자로 인정했다. 현대제철과 한국GM, 삼성전자서비스도 2심에서 패소한 뒤 상고심을 진행 중이다. 김동욱 세종 변호사는 “아직 하급심 단계에 있는 근로자들이 손해배상 청구액 규모를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업들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경진/곽용희/김진성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