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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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차 유치원 교사인 안모씨(26)는 최근 다니던 인천 소재 A 유치원을 그만뒀습니다.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여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생활에 지친 탓입니다. 그는 "세금과 사학연금 등을 제하면 매달 실수령액이 170만원 수준이었다"며 "경력이 쌓여도 월급은 항상 최저임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국내 대기업 가운데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긴 곳이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해 각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1억3500만원), SK하이닉스(1억3385만원), LG전자(1억1200만원), 현대차(1억500만원) 등의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은 대기업은 35곳에 달했습니다.

직장인들의 꿈이라 불리는 억대 연봉자가 늘고 있지만, 모두가 많은 급여를 받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기업과 달리 몇 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는 업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사립 유치원입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9620원입니다. 월급으로는 201만원이고 국민연금과 세금 등을 떼면 실수령액은 182만원이 됩니다. 사립 유치원 교사는 국민연금(4.5%) 대신 사학연금(9%)을 내니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실수령액이 174만원으로 줄어듭니다.

근무 여건을 따지고 들어가면 안씨가 받은 급여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기로 했지만, 아이들을 맞이해야하다보니 실제로는 오전 8시20분부터 출근한다"며 "학기초나 공개수업 등을 앞두고서는 업무가 많다보니 밤 늦게 퇴근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별도의 수당을 받은 적은 없다는 안씨. 그는 "아이들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이들과 일하기 위해 그동안 공부한 생각을 하면 너무 아깝다"면서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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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차 유치원 교사인 백모씨(29)도 퇴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백씨는 "유치원에서 받는 월급이 세후 200만원도 되질 않는다"며 "호봉이 올라도 월급을 높여주지 않아 항의하니 (유치원 원장에게서)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냐'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다른 유치원으로 이직을 알아봤지만, 경력을 인정해줄 수 없다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경력이 쌓일수록 걱정만 늘어간다"고 토로했습니다.

경력이 쌓여도 임금이 오르질 않으니 경력자는 아예 업계를 떠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유치원에 1~2년 차 신입 교사들만 남는 이유입니다. 실제 2021년 사학연금관리공단 통계연보에 따르면 유치원 교원 3만2206명 가운데 43%에 달하는 1만3899명이 재직기간 2년 이하였습니다. 범위를 재직기간 5년 이하까지 넓히면 저연차 교원은 2만1666명(67.2%)까지 불어납니다. 반면 10년 차 이상인 교원은 전체의 15%에 그쳤습니다.

일반 사기업으로 바꿔 생각해보겠습니다. 기업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신입사원이 입사해 3~5년 회사생활을 하면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하게 됩니다. 사립유치원은 전체 임직원의 70%가 사원~대리급인 회사인 셈입니다. 충분한 실무 경력이 쌓이기도 전에 직원 대다수가 퇴사하는 곳이라면, 정상적인 회사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급여 통계를 따져봐도 열악한 현실이 드러납니다. 사립 유치원 여성 교원의 평균 월급은 251만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원 평균 월급 596만원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평균의 함정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립유치원 여성 교원이 월급을 250만원 이상 받으려면 재직기간이 7년을 넘어야 합니다. 대다수가 그 전에 퇴사하니 일반적인 유치원 교원이 기본급 250만원을 구경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서울 시내의 한 유치원 인근에서 교사와 손을 잡은 어린이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유치원 인근에서 교사와 손을 잡은 어린이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실제로 받는 급여는 어떨까요. 신입 교원은 기본급 197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금 등을 떼면 171만원을 수령하는 셈입니다. 4년 이하까지 218만원을 받다 5년 이하는 230만원으로 늘어납니다. 그렇더라도 실수령액은 200만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평균 급여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사립 유치원 여성 교원의 평균 월급은 25세 미만이 192만원이고 28세 미만에서 202만원을 기록하며 200만원을 넘어섭니다. 31세 미만에서 216만원으로 210만원을 처음 넘깁니다.

그렇다 보니 전체 사립 유치원 여성 교원의 71.1%는 급여가 225만원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20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도 45%를 넘었습니다. 전체 여성 교원의 절반 가까이가 월 200만원도 받지 못한다는 것인데, 최저임금이 지켜지는지도 의문스러울 정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 유치원 업계 관계자는 "사립 유치원 교사들의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정부가 국가 예산으로 처우개선비를 준다"며 "(일부 유치원들은) 이를 구실로 월급을 적게 주고 자체 호봉표를 만들어 담합하기도 한다"고 귀띔했습니다. 이어 "그러다 경력이 쌓여 호봉이 높아진 경력 교사는 급여를 동결하거나 쫓아내는 것이 관행처럼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처우개선비는 말 그대로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교육 당국이 지원하는 돈입니다. 2011년부터 지급했는데, 올해는 담임수당 13만원, 기본급 보조금 60만원, 장기근속수당 4만원으로 구성됐습니다. 신입 교원을 기준으로 유치원에서 기본급 197만원을 받고, 교육청에서 별도로 73만원을 더 받는 셈입니다.

정부 보조를 받아서나마 열악한 처우가 개선된다는 점은 다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교사들이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유치원 교사들이 자기 경력을 정당하게 인정받고, 보다 오래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대한민국에 더 이상 소아청소년과라는 전문과는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폐과를 선언했습니다.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상의할 의사 선생님도 유치원 선생님도 하나둘씩 떠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평균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습니다. 그러니 저출산 정책에서는 '아이가 귀하다'고 합니다. 그 귀한 아이들을 부모와 함께 키우고 돌보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귀하게 대우하는 때가 빨리 오길 바랍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