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바이든 외교는 실패했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회원국이 지난 주말 ‘자발적 감산’을 깜짝 발표했을 때 가장 입맛이 쓴 사람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작년 7월 증산을 요청하려고 사우디까지 직접 찾았지만 연타를 맞은 꼴이 됐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어색한 ‘주먹 인사’를 나눴다. 빈 살만과 악수하지 않은 사실은 유독 크게 회자됐다.

이 장면을 놓고 어정쩡한 타협의 결과란 해석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였던 자말 카슈끄지의 피살 배후에 빈 살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으나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 협조는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사우디 감산, 배신 아닌 생존 전략

회담 결과는 미국에 굴욕적이었다. 사우디를 포함한 OPEC+는 바이든 대통령의 귀국 직후 증산량을 대폭 축소했다. 작년 10월엔 하루 200만 배럴의 감산을 결정했다.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인플레이션 위기를 겪던 바이든 정부로선 강펀치를 맞은 셈이다.

이번 OPEC+의 추가 감산은 결정타나 다름없다. 기존 감산량을 합하면 하루 366만 배럴에 달해서다. 글로벌 수요의 3.7% 규모다. 국제 유가가 조만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월가 분석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의외인 건 미국의 반응이다. 백악관은 “OPEC+의 감산 결정이 타당하지 않다”면서도 사우디를 ‘80년 전략적 파트너’로 칭하는 등 수위를 조절했다. 작년과 비교하면 유가가 많이 안정된 만큼 산유국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작년 10월만 해도 ‘사우디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오랜 우방인 사우디의 ‘배신’은 바이든 외교 실패의 산물이 아니다. 두 나라 간 밀월이 흔들린 건 2000년대 후반 버락 오바마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수압파쇄법 개발에 따른 셰일혁명은 미국을 수년 만에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로 올려놨다. 미국 내 생산량의 36%가 셰일층에서 나온다. 사우디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수입하던 미국으로선 사우디에 목을 맬 이유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원자력·신재생 등 대체원 늘려야

사우디가 두 번째 경제 대국인 중국과 새로운 밀월을 시도하고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이 주도하는 안보 경제 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엔 협상 파트너로 참여하기로 했다. 빈 살만 왕세자와 시진핑 국가주석은 만날 때마다 반갑게 ‘악수’하는 사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사우디 전체 원유의 27%, 화학 제품의 25%를 수입하고 있다.

사우디가 원유의 위안화 결제까지 허용하면 197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온 ‘페트로 달러’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 위안화 결제는 중국의 오랜 염원이다. 사우디가 주도한 이번 감산 결정에 바이든 정부가 강경 대응하지 않은 건 원유·달러 패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이처럼 복잡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원유 생산량이 미미하고 석유 제품의 수출입 비중이 큰 한국은 유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응책 마련조차 쉽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석유 의존을 낮추는 게 관건이다. 원자력 신재생 등 대체 에너지원을 확대하는 게 대안 중 하나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