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뒤로한 채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
응답하라 90년대…신간 '20세기 청춘'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칠현(H.O.T. 멤버 강타의 본명) 부인', '(은)지원 부인' 등으로 자신을 칭했다.

귀가 후 늦은 밤이 되면 책상에 앉아 라디오를 켜고 '신해철(유희열)의 음악도시'를 들었다.

심야 라디오는 근사한 지식의 보고였다.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타르코프스키와 왕자웨이(왕가위·王家衛) 감독을 소개하는 데 열을 올렸고, 당대 음악을 주름잡았던 동아기획이나 하나뮤직 레이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찬란했던 1990년대 이야기다.

핑클,
1981년생 구가인 씨가 쓴 에세이 '20세기 청춘'(모로)은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그때는 누구나 그랬듯, H.O.T., 젝스키스, S.E.S., 핑클 같은 1세대 아이돌에 '충성'했고, 마이마이에 이어폰을 꽂고 심야 라디오를 들었으며 대학에 가서는 '싸이월드'에 접속해 일명 '싸이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응답하라 90년대…신간 '20세기 청춘'
그러나 화양연화 같은 시절은 훅 지나가기 마련이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저자는 이제 한 신문사에서 허리 역할을 맡고 있고, 집에서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은 대개 팍팍하다.

직장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눈치를 골고루 봐야 할 처지다.

선배 세대의 하소연을 다 받아줘야 하고, 나 때는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을 하는 후배들의 용기에 감탄하기도 한다.

동년배의 빠른 성공에 기가 죽어 후배를 상사로 모시는 상상을 하고, MZ 세대를 노린 "평생직장 따윈 필요 없다.

최고가 되어 떠나라!'라는 플랫폼 기업의 슬로건과 '철밥통'과 '평생직장'으로 유혹했던 자기 세대의 직장을 비교하기도 한다.

집에서의 생활도 쉽지 않다.

젊었을 때는 친구들과 학부모를 동원해 가는 행사를 비판했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자 한복까지 빌려 입고 학교 행사에 참여한다.

또한 책과 유튜브, 블로그 등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걱정을 거듭하고 "피곤을 무릅쓰고 엄마 외교에 나서서 내 아이를 위해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 애쓰는" 엄마 역할을 맡는다.

그러면서 고민한다.

'대체, 좋은 엄마란 무엇인가'를.
책은 이렇게 지나간 시절, 지나가고 있는 시절,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절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그리움과 힘겨움, 걱정과 불안이 교차한다.

그래도 한발짝 나아지는 사회를, 조금 더 성숙해지는 인생을, 조용히 응원하고 낙관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192쪽.


/연합뉴스